로마서 강해

롬12:1-2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아론33 2009. 3. 16. 16:27

 로마서26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롬12:1-2.


  그 동안 우리는 믿음의 원리 즉 믿음의 길에 대하여 상고하였습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의를 얻은 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사도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라고 사도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예식이며, 예전입니다.  그리고 예배나 제사하는 것은 구약이나 신약 모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존재하며,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제물 자체에  관심을 두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일그러진 관계를 회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조명하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시고, 제시하여 주신 길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와 예배의 목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여러 가지 제사제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여 줍니다. 


  구약의 제사제도를 종류별로 분리하면 다섯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번제가 있습니다.  이 제사의 방법은 살아있는 동물 중에 소나 양으로 예물 하여 불로 태움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제사의 의미는 제사자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유지와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 위하여 드렸습니다.   이를 그리스도에게로 적용하면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합니다(엡5:2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이를 성도에게 적용하면 믿음 안에서의 희생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소제가 있습니다.  이 제사의 방법은 곡식을 제단에 불사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소제의 영적 의미는 하나님께 충성과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삶을 성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드린 것입니다.   이를 그리스도에게로 적용하면 그리스도의 인격의 무죄함과 순수한 충성을 의미합니다(고후5:21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성도에게 적용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순수한 충성을 의미합니다(고전4:2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화목제가 있습니다.  이 제사의 방법은 생활 형편에 따라 흠 없는 수소, 암소, 염소등의 내장의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간에 덮인 꺼풀을 단에 불사름으로 드리며 나머지는 제사장과 제사자가 같이 화목과 친교를 도모하기 위해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면 그리스도를 통한 성도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합니다(요일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엡2:13-18).  이를 성도에게 적용하면 이웃 상호간에 평화와 교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속죄제가 있습니다.  이 제사의 방법은 생활의 형편에 따라 수송아지, 수염소, 암염소, 어린 암양, 산비둘기 둘 또는 집비둘기 새끼 둘,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등을 불로 때워 드리는 것으로 부지중에 지은 모든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드립니다.  이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의미합니다(요1:29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히9:12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물 또는 이웃에게 해를 가한 경우, 그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드린 것으로 제물의 내장과 기름과 두 꽁팥과 그 위의 기름, 간에 덮인 꺼풀을 단에 불사릅니다.  그리고 범죄한 물건의 보상으로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바치는 제사입니다.  이도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의미합니다(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아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담당시키셨도다).


  위의 제사 중에서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제는 자원하는 제사였지만 속죄제와 속건제는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사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미루어 짐작할 때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즉 죄된 신분과 죄된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법칙을 보여주는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의 원리로서 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하여 해방 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롬8:1).    이를 다른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죄악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장사 되여 새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롬6:2-4).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의를 얻은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가 사도 바울의 관심사요, 로마 교인들이 들어야 할 삶의 원리이며, 우리 성도의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오늘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믿음이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에 의하여 구원함을 얻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로서 어떠한 것을 요구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의 초기 시대에는 모두 생축의 제사가 필요했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으니, 대신 자기 자신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제사는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었지만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영적인 제사장이 되었습니다(히10:20; 벧전2:5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1)  


  구약에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며 성전을 일을 하는 전문가 그룹이었듯이 신약의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전문가 그룹이 되어야 합니다.   그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제물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즉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주장입니다.  여기 몸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삶이 미치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그곳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성전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나아가서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첩경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하여 가장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제물이 아닌 사람 자체 즉 사람의 회복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회복이 없는 예배, 즉 신실한 회개와 돌이킴이 없는 예배를 일절 기뻐 받으시지 않습니다.  구약의 많은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죄악을 돌이키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은 그러한 제사를 통한 제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견디지 못할 가증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사1:11-132)).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제사는 회복된 삶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회복된 삶의 성격이 오늘 거룩함3)이라 바울은 지적합니다.  이는 순결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순결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순결이 있는 사회는 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반대로 순결을 잃어버린 사회는 무질서와 혼돈의 사회로 빠져듭니다.   우리는 신앙인 이기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순결,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순결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순결은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만을 섬길 때 성립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십계명의 제 1 계명을 통하여 요구하시기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신5:7-10 사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요,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렇게 하셨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4).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만을 섬길 것뿐 아니라 당신만을 사랑하시기를 간곡히 원하십니다(신6:4-5).  인생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이방신이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헛건(사기꾼)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사기꾼을 사기면 물질과 정신을 도적맏듯이 우리 영혼이 상처를 입고, 버림을 받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더럽혀집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영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깊이 사랑한 만큼 하나님 앞에 응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호9: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순결을 잃어버리자 그들은 급속도로 타락하여 멸망을 자초하였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불순결한 자손이 되였습니다(렘5:7-9).  이스라엘 사람들이 영적인 순결을 잃어버리자 이방신에게 자녀들을 불 가운데 던지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백성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열하21:3-6). 이것이 타락입니다.  타락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간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영적으로 타락하자 인간 사이의 순결도 잃어버렸고, 자기의 나라도 이방 족속에게 빼앗기는 비운을 격게 되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순결은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남녀간에 사랑의 약속을 굳게 지킬 때 나타납니다. 즉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그 사랑의 약속이 지속되어질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쪽에서 변절하면 둘 사이에 화평은 깨어지고, 미움과 증오로 가득찬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에서도 순결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순결만큼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그리고 그 순결은 어디에서부터 지켜져야 합니까?  몸과 마음의 순결 선행 되어야 합니다.  몸으로부터 순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정신적인 순결이 있을 수 없고 정신적인 순결 없이 몸의 순결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순결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고, 이웃과 화평과 질서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올바로 나아가기 위해, 순결한 예배, 합당한 예배를 위해 바울이 충고하는 것은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세대가 어떠한 세상입니까?  믿음을 저버린 세상을 말하며,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혀 무관심한 세상을 말합니다. 요사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거리에 캐롤송이 들려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산타 할아버지에게 관심이 있지 정작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의 진정한 의미에 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야말로 앙꼬 없는 진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신앙의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풍행과 행동과 외형, 모양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요사이는 학교에서도 주문을 외우며, 점을 치는 일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경기가 장기간 침체 되여 사주관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윤리적으로 사회의 기강과 질서가 헤이되여 있는 현실을 살아갑니다.  지하철에서 경노석에 앉아있는 청소년을 향하여 자리를 양보하라고 한 노파가 폭행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다든가, 또는 부모를 업수이 여기는 행태들이 난무한 시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성윤리는 어떠합니까?  요즈음은 인터넷의 발달로 집단적인 체면에 걸린 것 같습니다.  타인의 사생활이나 성생활을 흠쳐보려는 혹의심과 상술이 만나 이 사회의 성윤리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본래 성은 은밀한 것입니다. 부부 이외에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 자체는 불결한 것도 수치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이 변질되고 왜곡되면 그처럼 해악을 가져다 주는 것이 없습니다.  마치 불이 사람의 손에 적절히 다루어지면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원료가 되지만 불이 통제되지 않는 다면 강원도 고성의 산불과 같이 많은 재산과 인명을 앗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요즈음의 성윤리 땅에 떨어진 것은 바로 후자의 경우와 동일합니다.  성이 통제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해악과 무질서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멸망하였습니까?  성이 변질되고, 왜곡되였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성적 순결을 강조하다가는 여권주의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습니다.  모잡지에서는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섹스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세대에서 돌아서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순결을 회복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순결을 회복함으로


  하나님 앞에 올바로 나아가기 위해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의 타락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지고 밤이 깊어 가듯이 그 정도가 깊어 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변화를 받아야 합니까?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야 할 주체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변화를 받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내 삶의 제1의 원칙이 되도록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기준이 삶의 기준이였지만 그리스도를 섬긴 이후로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기준이 되도록 변화를 받아야 회복된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바른 길입니다.  

  

  결론해서 말씀드립니다.  오늘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무엇입니까?  구약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배 형식을 통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으로 그러한 제사제도는 페지되었습니다.  그 대신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고, 삶 자체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순결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간에 하나님의 자리에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을 놓았던 자리에 다시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서도록 우리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타락한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본 받아 거룩한 예배자로, 신령한 예배자로 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올바로 응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2)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사1: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3) ʾάγιος 신성한, 거룩한, 봉헌된, 순결한.


4) (요일4: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