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롬13:1-7.

아론33 2009. 3. 16. 15:27

로마서 27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롬13:1-7.


  하나님은 질서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과 같은 무질서한 세상에 빛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을 만드신 후에 땅의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물들도 한 곳에 모으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세상의 틀을 잡아가셨습니다.  그러한 곳을 바라보신 하나님의 심정은 무척이나 좋아하셨고,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창조의 질서를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면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서해안의 파도리라는 해변에 서 보았습니다.   바람이 무척이나 거셌기에 물들이 바닷가에 서 있는 바위와 백사장을 삼킬 듯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휘몰아치던 큰 파도가 결국은 해안의 모래사장에 다다르자 순한 양과 같이 그 기세가 꺽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저는 욥의 고백1)과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말씀이 기억에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바다가 해변을 넘지 못하도록 백사장이란 충실한 경계병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질서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연계에 질서를 만들어 놓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 인간 세상에서도 무질서를 극복하게 하기 위해 모든 조직에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그 일례로 도로에서는 어떠한 자의 권위가 높습니까?  당연히 교통경관입니다. 운전수들이 이들만 보면 기가 죽고 주춤주춤하는 것도 도로상에서 이들의 권위가 적법하고 합당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만일 교통경관의 권위가 도로에서 무시되어진다면 도로상의 무질서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차들이 도로상에서 무사히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도로상에서 교통경관의 지시와 교통법이 운전수들을 적절히 통제하고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질서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 편리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세상의 질서와 유익을 위해 권세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집안에는 가장을 세우셨고.  의사 밑에 환자를 두셨습니다.  교사 밑에 학생을 두셨고,  교사 위에 학교장을 세우셨으며,  하나님께서는 또 나라를 세우셨을 뿐 아니라 나라의 질서를 위해 나라님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세우신 권세자들에게 굴복해야 하고 또 위에 있는 권세들은 하나님의 권세 앞에 굴복해야 합당합니다.  모든 권세와 권위의 출처는 바로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2).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면 어떻게 됩니까?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지 못할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몸이 불편하여 병원에 찾아갔다고 합시다.   요사이는 병원 의사들이 예의가 없어 환자들을 자기 친구나 동생 다루듯이 하는 모리배(謀利輩 도덕과 의리는 생각하지 않고 재리만 꾀함)가 종종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병마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예수님의 권위가 떨어지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되어집니다.  계시록에 보면 사데교회가 나옵니다. 사데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 위에 있는 권세 앞에 굴복하지 못할 때 그에 따른 결과는 너무나 자명한 것입니다.  

  권세 위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권세 앞에 굴복하지 않을 경우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에 바벨론와 느브갓네살이 있었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거머질정도로 그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듯하였습니다(단4:22).  그러나 그가 교만하여 자기의 권세와 위용의 출처를 알지 못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권세를 꺽으셨습니다.  그 결과 느브갓네살 왕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칠년을  미친자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한 고난과 고초을 다 겪은 후 느브갓네살은 총명을 되찾아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존경하였으며, 하나님의 권세를 다음과 같이 높였고 깨달은 바를 진술하였습니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단4:34, 37)”라고 찬양하였고, 하나님 앞에 진술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근거해서 볼때에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그 권세들 앞에 우리는 능동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측면에서 바울은 1절과 2절을 통하여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롬13: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그런데 오늘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국가 관원들의 권위에 대하여 굴복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하나님의 사자, 선을 이루는 자, 칼을 가지고 공권력을 집행하는 자라는 비유를 통하여 그 권위에 굴복해야 될 타당성을 간접적으로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국가 관원들 앞에 맹종해야 될 것이냐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원들이 부패하고 타락하였는데도 그들에게 백성의 의무를 다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얼마전 경기도 일대의 러브호텔 문제로 지방자치 기관과 주민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주민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자치기관에 내지 말자는 공동전선을 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므로 위에 있는 권세, 관원들에게 굴복하기에 앞서 우리가 전제해야 될 몇 가지 사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은 관원들이 선을 이루는 자로 설 때와 하나님의 공의와 관계된 사역을 감당할 때에 한해서 복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관원들이 하나님의 정의에 정반대로 행할 때는 굴복할 필요와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구약에 미가야 선지자는 부패한 왕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한 전쟁이라고 맞섰습니다.  그러나 부패한 정권과 결탁한 시드기야를 비롯한 모든 선지자들은 그 회복의 전쟁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전쟁이며,  그렇기에 반듯이 승리할 것이라는 거짓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직언을 한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의 미움을 받아 옥에 갇혔지만 결과적으로 아합은 그 전쟁에 나가 참패를 당하였을 뿐 아니라 전사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열상22장).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영적인 타락이 나라를 얼마나 어지럽히며, 욕되게 하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에 세례요한도 부도덕한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아내로 취하자 그것을 지적하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고 결국은 목이 잘리워 죽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이 도덕성을 상실하면 백성은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기 마련입니다3).  그러므로 우리 기독인은 세례요한과 미가야 선지자와 같이 정권의 부도덕성을 일깨워 주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위협을 가하자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1956년 공산정권하의 동독교회 지도자들은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복음은 모든 인간 권력의 전체주의적 주장을 거부하고 하나님 거스르는 법률과 제정에 순종할 것보다 도리어 고난을 당할 마음 준비를 시켜준다”고 선언하였습니다.

  1963년 동독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교회의 자유와 봉사에 관한 10개조 선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목적에 유리하게 정의를 왜곡한다든지 부정하는데 관용한다면 또는 우리가 우리의 압박 받는 이웃이 압박을 받으며 인간성을 짓밟힐 때 그들을 붙들어 주지 못한다든지 그들의 편에서는 일을 못한다면 불순종으로 행동하는 것이 됩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생각하여 볼 때 관원들이 하나님의 사자와 같이 악한 일에 대하여 칼4)을 가지고 단죄(斷罪 죄를 처단함)하는 일을 할 경우에 한해서 또 백성들을 향하여 선을 행하는 일에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을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을 이루는 자로서 백성 앞에 설 때만이 그들에게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으로 굴복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오늘 사도바울은 3절과 4절의 말씀을 통하여 잘 설명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롬13:3-5)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우리는 이러한 정권(상선벌악, 권선징악)과 관원에 대하여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야 하고, 기꺼이 그 정책에 동조하고 기도하는 백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5).  그리함으로 이 땅에 모든 정치와 정책이 하나님의 통치로 인하여 죄가 완전히 제거된 하나님의 나라를 닮아 가도록 성도들이 안내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와 관리들을 섬기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롬13:6-7)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오늘 그 대표적인 방법이 공세를 바치는 것과 경외심을 가지라는 것이 사도바울의 주장입니다.


  성도가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가 무엇입니까?  납세, 국방, 교육, 근로의 의무입니다.   오늘 바울은 그 중에 하나 납세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우리 나라가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에 많은 세금이 올라 서민고가 말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재원은 바로 국민의 혈세입니다.   이 국민의 혈세로 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복지 증진이라는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국가 앞에 우리는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국가의 관원들에게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에 두려움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경의‘를 의미하며 존경은 ’일반적으로 모든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할 경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도는 나라를 올바로 섬기는 지도자들과 종사자들에게 합당한 존경을 돌려야 합니다.  이유는 이들이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악을 억제하고 선을 증진시키는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사역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결론해서 말씀드립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인간세계의 질서를 위해서 권세자들과, 관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권위 앞에 굴복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따르는 나라와 정권이 선한 일에 합당하고, 선을 이루며, 하나님의 공의를 합당히 행한다는 전제 아래 그들을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며,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반면에 국가와 정부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어지럽히거나 타락한 모습으로 변질되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가와 정부가 하나님의 질서에 정면으로 충돌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느냐하는가?  우리는 미가야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그들 앞에 맛서야 하겠고, 세례 요한과 같이 부도덕한 정치관료들을 책망해야 하며, 베드로와 요한과 같이 복음 앞에 일관된 자세로 흐트러짐이 없이 빛된 역할을 감당하여 이 세상이 정화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이 땅에 미래가 있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의 첫절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라는 고백을 하는 것과 같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입니다.


1) (욥38:8-11)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렘5:22-2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 (골1:15-16)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3) (잠28:2) 나라는 죄가 있으며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청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4) μάχαιρα 로마의 단검을 가리키는 말로 시민을 사형시킬 때 사용했던 것이다.


5) (딤전2:1-3)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벧전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