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25 율법에서 자유로운 새 사람
지난 시간에 우리는 율법이 구원과 관련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향력이 종결되었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도 그 연장선 상에서 율법과 관련하여 우리는 어떠한 사람인가를 살펴보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율법이 구원과 관련하여 종결된 부분은 있으나 그래도 아직 그 도덕적인 요구사항은 유효하며, 예수 믿는 우리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중대한 사안임을 바울이 율법을 찬양하는 형식(12)을 빌어 우리 성도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덕적인 계율이 오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 자신에게 어떠한 역할을 감당하였는지를 밝히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크게 나누어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의 세 가지로 분류되어 집니다. 의식법은 제사법과 정결법등이 포함되는데 그리스도의 오심과 대속으로 다 완성되어 지금은 예배의 형태로 통합된 새로운 형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민법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해당되었던 민법과 형법등 이스라엘의 생활 규범과 관련된 것으로 이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고 천국이란 새로운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덕법 혹은 윤리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자가 계속적으로 지키고 생활해야 하는 윤리규범입니다. 이 법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기에 우리는 이 법 자체를 전체적으로 지킬 수 없으나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세상에서 믿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윤리 규범은 그리스도의 속죄 이후에 믿는 자에게 더더욱 강화되어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언제나 유효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은 그 대표적인 도덕법의 한 형태인 “탐내지 말라”는 말씀을 가지고 율법의 유효한 기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인용한 말씀은 구약의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대표적인 도덕법으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가장 귀중한 신앙의 계율입니다. 여기에 “탐낸다는 말은 갈망하다, 욕망하다, 음욕을 품다”는 뜻으로 타인의 물건이나 부인을 향해 음심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잘못된 일을 갈망할 때가 많이 있고, 또한 온갖 해로운 정욕에 사롭잡힐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법은 죄의 원인에 대하여 규명을 하지 않고, 죄가 구체적으로 들어나 입증이 되어야 처벌이 가능합니다1). 그러나 성경은 죄의 원인도 큰 죄로 봅니다. 예를 들면 마5:27-28의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법규들이 신앙인이나 인생들에게 죄 의식을 깨닫도록 한다는 것을 7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과정을 좀더 가까이 에서 관찰하도록 8-11절까지 바울 자신이 경험한 증거들을 제시함으로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설명합니다.
8절에서는 죄가 기회를 타서 바울의 심령 속에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죄가 계명 때문에 그 정체가 드러났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7절의 연장선에 있는 말씀으로 계명이 죄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현대 문명이 가져다주는 편의를 입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자동차문명입니다. 자동차는 삶의 수단으로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운송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를 운전하신 분이면 아시겠지만 자동차의 모든 법규를 잘 알고 운행하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특별히 초행길에 법규위반을 많이 하게 되는데, 교통경찰에게 걸리면 자동차법 제 몇조 몇 항에 의거하여 스티커를 발부하게 됩니다. 운전자가 법규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교통경찰의 스티커 발부에 의해서 그 경범죄가 드러나듯이 계명으로 말미암아 탐심이란 죄악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말씀을 8절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계명이 없으면 죄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예전에 법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할 때에는 자기의 자아대로, 자기의 뜻대로 살았으나 믿음 안에서 계명이 자기의 마음을 밝히자 죄의 목록들은 드러나고 자기의 옛 자아는 죽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즉 계명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는 다소 강한 어조로 표현합니다(롬6:23)2)
본래 계명은 행하라고 주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삶을 얻고 복을 얻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10 생명에 으르게 할 그 계명]3). 그러나 생명을 위한 계명이 바울 자신에게 죽음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본인이 죄의 정체를 다 알지 못하고 죄에게 속아 그것 때문에 사망 아래에 매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바울이 롬6:23에서 지적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란 말과 같습니다. 아담이 선악과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죽음에 이른 것과 같이 죄가 바울을 속이고 또한 우리 자신을 속여 그 결과 모든 인생이 죽음의 법칙에 철두철미하게 매여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토록 하나님의 계명 앞에 올바로 서지 못하고 패배를 선언4)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 문제인가? 이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를 바울이 증거 합니다. 율법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그리고 결국 이 문제들은 어디에서 해결할 수 있는가? 바울은 12절부터 15절까지 율법에 관하여 진단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16절부터 24절까지 진단하고 25절에 그 해결의 밝은 전망을 보여줍니다.
바울 자신이 죄의 지배아래에 놓이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죄를 드러낸 율법이 문제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율법을 비판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율법을 찬양합니다.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바울은 율법과 계명이 다 거룩하며 특별히 계명은 의로우며 선하다는 말을 더합니다. 또한 “14 율법은 신령하다” “16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라”고 말합니다. 이토록 바울이 율법과 계명이 거룩하다고 한 이유는 모두가 하나님에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이들 말씀 가운데 들어있기 때문이며, 이 땅에서 성도들이 구별되기 위하여 성도들도 이 법을 준수해야 했습니다5). 그러므로 율법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선한 것이 바울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인하여 죄가 드러나 죄의 심각성이 드러나(13)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리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것은 바울 자신이 육신에 속하여(14) 있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미워하는 것을 행하여(15) 죄 아래 팔렸다,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자신의 비참한 심경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바울 자신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율법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없다는 것을 밝히 보여줍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실패와 비참한 모습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부에서 내부로 즉 자기 안으로의 탐색을 시작합니다. 17절에 보시면 바울이 미워하는 것, 원치 아니하는 것, 자신이 육신에 속하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자신 속에 거하는 죄라고 고백합니다. 그 죄가 선치 못한 자신의 육신속에서(18) 악을 만들어 낸다(19)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죄가 바로 실패와 비참의 주인공(20)이라고 밝힙니다.
이와 같이 율법과 계명은 바울에게 죄인임을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율법과 계명이 바울에게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죄인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의 죄를 폭로하고 우리 신앙인으로 하여금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영적인 조명등의 역할을 합니다6). 이로 볼 때 율법과 계명은 구원의 절박함과 절실함을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노예가정교사)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이제 하나의 원칙을 깨달았노라고 고백합니다. 그 원칙(21)은 자기 안에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 심한 갈등이 상존(22-23)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전장에서 피곤에 지쳐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절규에 가까운 탄성의 소리를 자아 냅니다(24).
로마의 사형법에는 죽은 시체와 산 사람의 몸을 마주쳐 묶어서 그 죽은 시체에서 나오는 악취로 인해 죽게하는 사형집행의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바울은 아마도 이 사형집행법을 염두해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우리 역시 양심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한범쯤 해 보았을 것입니다. 내 본심은 이러한 것인데, 그 본심대로 살지 못하는 나를 한탄하면서 바울과 같은 곤고함에 묻혀 버릴 때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악에서 악이 나듯이 인생이 아무리 선한 것을 사모한다고 하여도 인생 안에서 그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없기에 바울이 말한 대로 죄의 법 아래로 자신이 사로잡혀 가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비참한 노예와 같은 인생에게 진정한 해방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누구입니까? 이제 바울은 25절을 통하여 그 해결의 밝은 전망을 제시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7)”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의 마음과 같이 폭풍 중에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4:27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사역들을 감당하셨고 완성하셨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8). 그러므로 육신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지 못하는 자들이 죄의 지배에 사로잡히나, 그리스도에게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기면 바울의 고민과 같은 정죄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인하여 드러나 죄의 심각성, 육신에 속하여 죄아래 팔렸던 비참한 삶에서 돌이킴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인으로 세웁니다. 그러므로 계명과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는 길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우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앞에 감사하는 산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 /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며, 그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벌을 과할 것인가를 미리 법률로써 명문화하여 국가의 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근대 형법상의 원칙을 말한다.
2)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3) 신5:31-33 너는 여기 내 곁에 있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로 이를 행하게 하라 하셨나니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레18:4-5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4) 8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9 나는 죽었도다, 11, 죄가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5) 레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6) 시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7)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8)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페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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