ΠΡΟΣ ΡΩΜΑΙΟΥΣ 8:1-11 영으로 사는 삶
1. ʾΟυδέν ʾάρα νΰν κατάκριμα τοις ʾεν Χριστω ʾΙησοΰ.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ʾΟυδέν ; ʾουδείς ʾουδεμία ʾδυδέν 아무도 --아닌, 아무도--않다, 아무것도 아니다, 무가치하다. ʾάρα ; 기본불변사 그러므로(추정을 나타내는 불변사),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면, 따라서, 이러므로. νΰν ; 현재시제의 기본 불변사 = 지금, 현재. κατάκριμα ; κατάκριμα 형벌, 정죄, 정죄의 선고, 심판, κατςακρίνω에서 유래 정죄하다, 심판을 내리다.
2. ʿο γάρ νόμος τοΰ πνεύματος της ζωης ʾεν Χριστω ʾΙησοΰ ʾηλευθέρωσέν σε ʾαπό τοΰ νόμου της ʿαμαρτίας καί του θανάτου.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γάρ ; (이유, 설명, 추측, 계속을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접속사)왜냐하면, 참으로, 실제로, 진실로. ʾηλευθέρωσέν ; ʾελευθερόω 자유롭게하다, 빚을 탕감하다, 해방되다, 자유케하다. ʾελεύθερος 자유로운, 노예가 아닌 혹은 속박되지 않은 에서 유래.
사도바울은 육신에 매여 생을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죄 아래 매이게 하는 지를 7장 후반부에서 잘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육체 안에 거하는 죄(7:17)는 바울 자신은 물론 모든 인간을 악을 행하는 자로 전락시켰고(7:19), 자기를 노예의 모습(7:23)으로 추락시키는 것을 친히 보았을 때,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라는 탄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오직 그리스도가 있음에 감사하며, 그리스도 있음에 자신을 성토하고 자학했던 패배자의 모습에서 갑자기 승리를 확신하는 전사와 같이 밝은 해결점이 될 빛을 발견한 바울의 고백을 또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망망대해에 폭풍우를 만나 방향감각을 잃고 헤메이는 난파선이 항구를 만난 듯 기뻐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토록 육체 안에 죄 때문에 괴로워했던 자신의 어두운 패배자의 모습을 뒤로하고 밝은 글을 로마의 독자들에게 쓸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읽으신 1절과 2절에 잘 기록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바울의 비참한 심경과 같이 죄 때문에 심판과 정죄를 당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기록하며 그 이유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은 물론 우리의 모든 죄악의 빛을 탕감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사이는 경제제일의 시대요 또한 신용시대이기 때문에 금융권에서 신용 조회하여 신용이 나쁜 사람은 모든 경제활동에 상당한 제약과 압박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은행권에 부채가 많은 사람은 그 부채를 다 갚기 전까지 마음에 자유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만 밀리면 노란, 빨간딱지가 날아오고 그래도 안되면 법적인 절차에 들어가 반강제적으로 빛을 갚게 합니다. 그러므로 요즘과 같이 경기가 불투명한 시대는 채무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성경은 죄를 빚진 자로 비유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마18:21-35).
이와 같이 죄는 우리를 율법 앞에 채무자로 세웁니다. 율법은 끊임없이 사람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발하여 모든 사지백체를 동여맵니다(7:9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7:11 죄가 나를 죽였는지라, 7:13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한 비참한 죄적인 신분을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고 바울은 우리 성도들에게 소망의 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벅찬 소식입니까?
여러분 죄 때문에 고통스럽습니까? 죄 때문에 마음에 상심이 찾아옵니까? 죄 때문에 고민과 번민이 우리의 가슴에 밀물과 같이 밀려옵니까?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우리의 빛을 다 갚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빛을 탕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있는 죄의 채무를 탕감하여 주셨으며, 또한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까? 3절과 4절을 읽어봅시다.
3. τό γάρ ʾαδύνατον του νόμου, ʾεν ω ʾησθένει διά της σαρκός, ʿο θεός τόν ʿεαυτοΰ ʿυιόν πέμψας ʾεν ʿομοιώματι σαρκός ʿαμαρτίας καί περί ʿαμαρτίας κατέκρινεν την ʿαμαρτίαν ʾεν τη σαρκί,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ʾαδύνατον ; ʾαδύνατος 불가능한, 무력한, 할 수 없는. ʾησθένει ; ʾασθενέω 약하다, 연약하다, 가난하다.
4. ʿίνα τό δικαίωμα τοΰ νόμου πληρωθη ʾεν ʿημιν τοις μή κατά σάρκα περιπατοΰσιν ʾαλλά κατά πνεΰμα.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ʿίνα ; 목적, 한정, 결과를 나타내는 기본접속사 --하기 위해, --하는 것, 하도록, --것. δικαίωμα
; δικαίωμα 법령, 방면 혹은 정죄의 선고, 의로운 행위, 규례. πληρωθη ; πληρόω 가득차게 하다, 완성하다, 성취하다 가득찬, 충분한에서 유래. περιπατοΰσιν ; περιπατέω 걸어다니다, 걸어 돌아다니다, 따라다나다, 교제하다, 살아가다, 걸어가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말할 수 없는 채무에 시달리거나 정신적으로 심한 어려움에 처할 때에 부모나 형제는 우리의 위급함을 경제적, 정신적으로 도와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육은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잠17:17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어찌하든지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정신적인 위안이요, 삶의 새로운 탈출구가 됩니다.
신앙의 세계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아래 매여 죽음을 두려워하고 일생에 죄 아래 매여 종노릇하는 인생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 땅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오셨습니다1). 만일 인생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이 한 사람에게라도 있었다면 주님은 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배웠듯이 인생은 모두가 다 죄 아래 갇혀 있기 때문에 육신을 지배하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연약하여)2). 그렇기 때문에 죄를 가지지 않은 참 사람이 필요하였는데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3)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많은 사람들의 영이 무디어 무관심한 채로 그를 마구간의 말구유에 나게 하셨으나 그분은 천사의 노래대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바울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부르짖는 곤고하고 지친 나그네와 같은 인생들에게 참된 평화의 주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 육신의 죄를 정하셨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육신의 죄를 심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이미 당신의 몸으로 우리 온 인류가 져야될 죄의 심판을 십자가에서 홀로 담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가난을 짊어지시기 위하여 이 땅에서 가장 가난한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남은 그분의 옷 마저 군병들에 의하여 제비 뽑혀 빼앗기셨습니다4). 또한 우리 부끄러운 인생을 일깨우기 위하여 육신의 굶주림을 참고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헌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5). 그리고 실족한 심령들을 말씀으로 일깨우고 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6).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인생의 저주를 홀로 담당하심으로 우리 육신의 죄를 당신의 몸으로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십자가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였습니다7).
주님이 이토록 우리를 위하여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4절의 말씀대로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영을 좇아 행한다는 것은 성령과 교통하는 삶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하나님과 친교 하는 삶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삶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8)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행하면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고, 순종하게 됩니다9). 또한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되면 사랑10)을 이룰 수 있고,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11).
그렇다면 이제 육신을 좇는 삶과 영을 좇는 삶을 비교하여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5절부터 8절까지 읽으시겠습니다.
5. ʿοι γάρ κατά σάρκα ʾόντες τά της σαρκός φρονοΰσιν, ʿοι δέ κατά πνεΰμα τά τοΰ πνεύματος.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φρονοΰσιν ; φρονέω 이해하다, 생각하다.
6. τό γάρ φρόνημα της σαρκός θάνατος, τό δέ φρόνημα τοΰ πνεύματος ζωή καί ʾειρήνη.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ʾειρήνη ; 평화, 화평, 번영, 일치, 조화. ζωή ; 생명, 영생.
7. διότι τό φρόνημα της σαρκός ʾεχθρα ʾεις θεόν, τω γάρ νόμω τοΰ θεοΰ ʾουχ ʿυποτάσσεται, ʾουδέ γάρ δύναται.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ʾεχθρα ; 증오, 불화, 적개심, 원수. ʿυποτάσσεται ; ʿυποτάσσω 아래에 두다, 또는 예속시키다, 복종시키다. δύναται ; δύναμαι 할 수 있다, 힘이 있다.
8. ʿοι δέ ʾεν σαρκί ʾόντες θεω ʾαρέσαι ʾου δύνανται.
ʾαρέσαι ; ʾαρέσκω 기쁘게 하다, 기쁘게 하려고 힘쓰다, 기쁨이 되다, 은총을 구하다.
먼저 육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육신으로 사는 삶은 그의 정신구조가 육적이기에 육신적인 일만 계획하고 실천합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사망이요, 그 정신구조 자체가 하나님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불화하기 때문에 그 결국 원수가 되며, 또한 하나님 법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복종하지도 못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바울이 증거 합니다. 이 사건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구약의 사건은 노아의 방주 기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가 타락하심을 보고 그들을 홍수로 벌하시기로 준비하셨는데 그 주된 이유가 바로 그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12). 이 심판의 기사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인생이 육신을 좇는 다는 것과 같이 가장 무모하고 비참한 삶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와 같이 우리 인생이 순간적인 일락에 빠져 육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고, 결국은 파선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사는 삶은 어떠합니까? 영으로 사는 삶은 생명(영생)과 평안이라고 바울이 증거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으로 사는 삶이 바로 참된 생명으로 사는 길이요,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길이며,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근거요, 하나님과 화합하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생이 불행해 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모두 하나님과의 불화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화합지 못하였을 때 인생에게 비참이 찾아 왔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을 때에 그 왕위를 잃어야 했고,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13). 또한 신약에 그리스도를 배반한 가륫 유다도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였을 때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과 화목14)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궁극적인 출발점과 그 과정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제 9절부터 11절까지 읽으시겠습니다.
9. ʿυμεις δέ ʾουκ ʾεστέ ʾεν σαρκί ʾαλλά ʾεν πνεύματι, ʾείπερ πνεΰμα θεοΰ ʾοικει ʾεν ʿυμιν, ʾει δέ τις πνεΰμα Χριστοΰ ʾουκ ʾέχει, ʿοΰτος ʾουκ ʾέστιν ʾαυτοΰ.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ʾείπερ ; 아마도 --이라면, 만일.
10. ʾει δέ Χροστός ʾεν ʿυμιν, τό μέν σωμα νεκρόν διά ʿαμαρτίαν, τό δέ πνεΰμα ζωή διά δικαιοσύνην.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δικαιοσύνην ; δικαιοσύνη 정의, 정직. 의.
11. ʾει δέ τό πνεΰμα τοΰ ʾεγείραντος τόν ʾΙησοΰν ʾεκ νεκρων ʾοικει ʾεν ʿυμιν, ʿο ʾεγείρας Χριστόν ʾεκ νεκρων ζωοποιήσει καί τά θνητά σώματα ʾυμων διά τοΰ ʾενοικοΰντος ʾαυτοΰ πνεύματος ʾεν ʿυμιν.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ʾεγείραντος ; ʾεγείρω 눈을 뜨게하다, 일으키다, 자극하다, 나타나다, 일어나다. ʾοικει ; ʾοικέω 살다, 거주하다, 머물다. ζωοποιήσει ; ζωοποιέω 살리다, 생명을 주다. θνητά ; θνητος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을 운명의. ʾενοικοΰντος ; ʾενδύνω 가만히 들어가다.
우리가 영으로 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9절의 말씀과 고전12:3의 말씀은 대등한 말씀인데, 이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서는 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삶의 출발지가 바로 성령의 역사 하심에서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거듭나야 영적인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어느 날 밤 유대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선생이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다”라고 주님의 기사와 이적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질문과 동떨어진 대답을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때에 니고데모가 대답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니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그 때에 또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니고데모만 거듭나야 할 것이 아니라 이 시간 우리 자신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할 때 참된 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발자취가 있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세력을 이기시고 우리 안에 죄를 십자가에서 정죄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 되여 우리의 영혼이 사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10절의 말씀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우리는 이미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인생입니다. 그러나 죽었던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그리스도의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입되면 그 인생의 영혼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15). 이렇게 될 때 영으로 사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영으로 사는 인생에게 어떠한 결과가 있습니까? 11절에 보니 우리의 영만 살 뿐 아니라 우리의 몸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바울은 이미 7장에서 자신의 몸이 사망의 몸이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비참과 슬픔의 고백을 하였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영적인 삶을 사니 그 죽을 몸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것16)이라는 밝은 소망의 글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벅찬 복음입니까?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영과 육이 죽을 것이나 영으로 살면 몸과 영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믿음, 하나님과 화목하는 신앙, 하나님 법에 사랑으로 굴복하는 은혜를 간구하며, 세상의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히2:14-16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니라.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2) 롬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3)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를 없으시니라.
4) 마27:35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5) 마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6) 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7)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8)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9) 벧전1:2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은 입은 자
10)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갈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12)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13) 대상 12:13-14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14) 고후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15)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16)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50-53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래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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