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설교본문

히11:8-16 믿음과 약속

아론33 2009. 3. 16. 19:34

  믿음과 약속


본문:히11:8-16


  믿음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았고, 그 약속에 근거하여 삶을 전개하였으며, 그 약속을 후손들에게 현실화 하였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아브라함에 하신 약속과 그 심성을 지배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으며, 우리 또한 믿음의 측면에서 그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역에 머물러 사는 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9절에도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라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아주 낯선 땅 이였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수24:3) 새로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낯설 뿐만 아니라 두려운 일이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어린 시절보다 어른이 된 시기에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어린 시절에는 고향을 등지는 아픔을 잘 모르지만 어른들에게 있어서 삶의 터전을 벗어난다는 것은 당장에 생계의 위협은 물론 낯선 인물과의 교제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땅에서 산다는 것은 설레임 보다는 두려움이 더 큰 것이 현실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지시(창12:1)를 받고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당장에 농사를 지어보지도 못하고, 막막한 생계를 위해서 약속의 땅을 떠나야 하는 천재를 당하고 맙니다(창12: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고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러한 시련의 시간 속에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대처합니까?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왔지만 과정적으로 볼 때 약속의 땅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아니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결과적으로 볼 때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과정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약속의 땅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 순탄하지도, 순조롭지도 못한 매우 두려운 일이였으며, 더구나 매우 불편한 일이였습니다.

  그가 약속의 땅에서 벗어나자 그의 영적인 자세가 흐트러집니다.  그만 그의 아내를 담보삼아 애굽의 바로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합니다(창12:10-20).  비록 하나님의 간섭으로 다시 온전하게 부인을 되찾았지만 그는 똑같은 실수를 한 번 더하고(창20장), 그 아들 이삭도 동일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창26:6-11).  

  아브라함이 결과적으로 가나안 땅에 살면서 신앙적인 인내로 아름답게 정착을 하였지만 그 과정은 퍽이나 그를 힘들게 하였고, 하나님과 밀고 당기는 신앙적인 시련이 있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무엇이길래 그는 자기의 고향을 등져야하는 모험을 감행했고,  더욱이 성에 살던 룻과는 정반대로 주거가 안정되지 못한 장막의 삶을 살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이중적입니다. 


첫 번째로는 보이는 것으로서 8절에 보시면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마 약속하신 땅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에 더불어 일시적인 거주지로서의 땅이 아닌 영구적인 거주지로서의 땅이 되어야 하기에 자손에 대한 약속과 큰 민족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창12:2).  그리고 이 약속 중에 아브라함에게 의가 되는 약속이 들어있는데 이는 창15:5-6의 말씀입니다1). 이 약속이 바로 아브라함을 의인되게 하는 것으로 그 자손의 정점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갈3:16 /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에 약속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사는 삶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면적인 특성을 ‘의’로 규정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주어질 때만이 비로소 사람은 약속의 땅에 거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 ‘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믿음의 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반대로 가나안의 족속들은 이 ‘의’에 합당하게 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그 땅에 토해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레18:24-28)2).

  사람들은 때때로 모험을 좋아합니다.  그 모험이 자신들에게 유익을 준다고 할 때 그 모험은 더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큰 기대 이상의 역동성을 제공하여 줍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신앙적인 모험과 이상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물론 자기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그로 하여금 역동적인 신앙의 모험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 후손들 중에 세상의 구원자가 날 것에 대한 믿음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어떠한 삶의 불편도 인내하게 하는 촉매제와 같은 기능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눈에 가나안 땅 위에 비록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제대로 나지 않는 황무지로 보였지만, 그곳에 믿음의 백성들이 거하고, 의로운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하나님의 온전한 나라를 이루실 것을 바라보니 천지를 얻은 듯, 가장 행복한 사람인 듯 그 자신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심정을 가누지 못하였습니다(요8:56)3).  그곳에서 천대만대 살게 될 믿음의 후손들을 생각하니 때로는 범찬 가슴을 가눌 길이 없어 아무도 없는 황량한 들에 아브라함의 감사하는 기도로 채우고 또 채워갔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험난한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민족과 자신의 가계에서 오실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열망은 그 고비를 충분히 누르고, 또 눌러 마침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신앙의 승자로 오늘 본문에 히브리서 저자를 통하여 기록하게 만든 것입니다(히11:12)4).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베푸신 은혜이며 그 은혜의 연장선상에 우리가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의 후손으로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갈3:26-29)5)

  아브라함에게나 우리에게나 분명한 것은 ‘믿음의 의(롬3:21-22)6)’를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 아래서 삶을 살아간다는 공통의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의는 유형적인 땅에서 삶을 살게 할 뿐 아니라 무형적인 땅 내세의 땅, 장차 온 세계에 이루어질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 나라는 바로 의가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합니다(벧후3:13)7).

   

  두 번째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아브라함이 부여잡은 약속이요, 우리가 항상 부여잡아야 될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땅으로서 본문 10절에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그리고 13절에서 16절까지 이곳을 본향이라고 합니다8). 이 말씀과 같이 아브라함이 부여잡은 약속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과 새 땅이였습니다(계21:9-).   이 성은 어린 양의 아내만이(9,10)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함으로 그 어떠한 세속적인 것이 틈타지 못하는 곳입니다(27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하나님의 도성은 진동하지 아니할 영존할 나라요, 하늘에 기록된 자들만 가는 곳으로 장자들의 총회라고도 합니다.  그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는 삶이 약속을 바라보는 자의 삶이기에 반드시 은혜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히12:22-299)).  은혜는 하나님께서 통치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영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러하기에 이 은혜가 임하면 믿음이 자라고10), 복음의 일꾼이 되고11), 마음에 말씀을 확증12)시킬 수 있습니다.

  영구한 도성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선을 행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히13:13-16)13).  선을 행한다하는 것은 말씀을 지키고, 말씀이 삶을 지배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계시록22:14-15 /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 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의 말씀이 의미상 통하는 말씀으로 반드시 약속의 말씀에 입각하여 행하는 믿음이 있어야 그 믿음을 주님이 열납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반드시 자기를 극복하고, 세상을 이기고, 오는 시험을 능히 극복한 최후의 신앙의 승자들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계3:12)14).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아브라함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자기의 장막에서의 삶도 그리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영혼이 은총을 입으니 슬픔 많은 삶도 천국으로 화하는 것을 체득하게 됩니다.  그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쾌락을 물마시듯이 하는 삶이 빼곡한 수풀처럼 그의 영적인 호흡을 짓눌렀지만, 그는 오히려 그러한 곳에서 외인 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히11:9 / 외방에 있는 것같이 히11:13-1415)).   본문에 외방이란 말은 낯설다는 의미입니다.  그 시대의 타락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영적인 모습을 낯설은 존재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약속의 땅에 우거하여’라는 말씀에서 우거하였다는 말 또한 ‘이방인으로 거주하였다. 이방인으로 살았다’라는 뜻으로 그 시대에 영적으로 개혁되지 않은 사람들과 동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삼재사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 낯선 존재입니까?  아니면 세상에 잘 적응하고, 세상에 정렬에 사로잡힌 주도적인 사람들입니까?  이 시간 자기자신을 진단하고 반성하여 주님 앞에 돌아 서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본 받아야할 신앙적인 모습은 그의 신앙적인 용단을 자신에게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붙이인 이삭과 그의 아내 사래에게도 동일한 결단을 하게한 점입니다.  자신의 홀로된 신앙이 아니요 가족공동의 신앙이 되게 하였다는 것은 신앙적인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약속의 연장선상에 우리가 동일한 믿음으로 함께 동참하고 있으니 아브라함과 같이 그 어떠한 시험과 어려운 환경이 와도 극복해야 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보이지 않았던 새 예루살렘을 보고 살았듯이 우리 또한 그 성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속된 것에서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오고오는 세대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되기를 소원하는 이 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은 지금 과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것이요, 생명 그 자체입니다.


1) 창15:5-6 /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행동하는 의 시106:28-31. 의를 구하는자는 생명 잠21:21)


2) 레18:24-28 / 24.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26.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시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도 행하지 말라  27.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3) 요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4) 히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롬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5) 갈3:26-29 /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니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를 자니라.


6) 롬3:21-22 /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7)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8) 히11:13-16 /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9) 히12:29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리   / 은혜 - 감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버받으실만하게 예배드라는 말씀  경건함이란 영적인 정절을 말함(딤전2:9 염치와 정절).


10)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 찌어다. 


11) 고전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12) 히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3) 히13:13-16 / 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4) 계3:12 /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5) 히11:13-14 /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