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설교본문

대하20:7-9 진실한 친구를 원하거든

아론33 2009. 3. 16. 17:26


  진실한 친구를 원하거든


본문말씀:대하20:7-9

외울말씀:대하20:7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기독교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토마스 아켐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친구로 삼아라.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대를 버릴지라도 그분만은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고 보호해 주시리라. 그대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세상 모든 사람들과의 이별은 예정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세상에서 진실한 친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진실한 친구는 없으되 진실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노력의 수행을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우선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하나님의 벗이 되어야 합니다(대하20:7-9 /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본문에 주의 벗이란 하나님이 사랑하셨다는 의미에서 온 용어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우정이 있지 아니하고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알아야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욥29:4. 나의 강장하던 날과 같이 지내었으면 그때는 하나님의 우정-친밀한 대화, 친숙, 모임-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믿음으로 동행하였고(약2:21-22), 욥과 같은 경우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한 이웃으로, 친구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벗이 될 때 비로소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진실한 친구를 밖에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성립될 때 진실한 친구가 나자신부터 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벗이 되는 길은 또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야 가능합니다(사41:8-10 /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거룩한 선택-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날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될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증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바로 그 증거이며, 이 시간 우리가 예배에 성실히 참석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 사실은 믿어야하며, 이 현상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진실한 친구가 될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온전히 선택하셨고, 붙들어 줄 것이며,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인지할 때 하나님의 벗으로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진행 가능합니다.(약2:22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웃의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길은 위의 내용-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에 대한 확신-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가 형성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욥42:7-10 / 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의 친구들은 참으로 다정다감한 사람들이였습니다. 욥은 본래 부자였지만, 인재와 천재로 인한 재앙과 병으로 많은 재산을 허비했습니다(잠19: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그의 가장 가까운 아내마저도 그러한 욥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욥을 멀리하였습니다(욥2:7-10).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그를 멀리하지 아니하고 욥의 고통을 보면서 같이 울어주었고, 칠일 칠야를 함께 땅에 앉아 침묵으로 동참하였습니다(욥2:11-13).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욥이 먼저 그들에게 진실한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진실한 친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먼저 진실한 친구가 되어줄 때 아픔을 나누는 소중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욥의 경우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우정을 나눈 사이였습니다.  그들은 민족의 환난과 시련기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뜻을 같이한 소중한 우정을 나누면서 믿는 자로서 우정의 아름다움을 드높인 아름다운 사이였습니다(단1:8-21).

  또한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요나단도 하나님께 향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한 아름다운 사이가 되었습니다(삼상18:1-5, 삼상20:17, 42 삼상23:15-18 /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다윗은 물론 요나단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믿음의 공로자입니다(삼상14:6-15).  특히 다윗과 요나단은 영적인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그 서술하는 용어가 거의 흡사합니다(삼상14:6, 삼상17:26, 36).  이는 그들에게 믿음의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진실한 친구가 되기를 원하려면 믿음이 전재되지 아니하고서는 되어 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구는 신뢰를 바탕으로 우정이라는 아름다운 화초를 가꾸는 일입니다.  그 신뢰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전재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신뢰가 먼저 조성되어진다면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외모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을 선택하여 왔고 이후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우리를 실망시키고, 기만할 것이며, 심지어 적대적인 관계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진실한 친구를 원하거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벗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로서 이웃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