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제일이라. 고전13:13
본문에서의 사랑은 분명 믿는자들과 연관된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제일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일 것인데, 그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특별히 많은 종류의 사랑중에서 믿는자들에게 있어서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믿음의 내외적인 요소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하여 앞의 문맥을 살핌으로 사랑이 제일인것을 사랑의 필요성과 그 정의를 알아본 후에 사랑의 항구성을 살펴서 사랑이 제일인 것을 같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선 사랑의 필요성에 관하여 알고자 합니다. 1절에서 3절까지를 살펴보면, 사랑이 없다면, 사랑이 없다면, 사랑이 없다면의 가정법을 세번 반복함으로 사랑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믿는자들에게 역설적으로 강청합니다.
언어생활에 있어서 필요합니다.
내가 사랑의 방언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되고, 여기에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지상의 말-사람의 방언, 천상의 말-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다시 말하여 언어의 탁월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언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지라도, 다시 말씀드려서 앞뒤정연한 논리로서 많은 사람들을 굴복시킬 지라도, 그 중심에 사랑이 없다면 의미없는 공허한 소리와 소리의 공해로,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무용한 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은 말에 능통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고전1:4-5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꼐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라고 기록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구변이 사랑의 방편으로 사용될 때 만이 온전한 자가 될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에서 필요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하나님의 경영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여기에서 비밀이 감추어진 것들과 관련이 되어있다면, 지식은 바로 지척에 놓인, 좀더 필요한 것들을 이해하는 것으로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식구들은 조그만한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의 잣대, 성경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정죄하는 우을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증세가 심화되면, 믿음의 교만으로 퇴화하여 교회의 성숙은 물론, 자신의 신앙도 무미건조해지는 마른나무, 생명력이 없는 신앙으로 변질되어집니다. 이것을 경계하는 방법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원리가 믿음의 중심에 있다면 그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지 정죄하는 믿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헌신의 생활에서 필요합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내가라고 할 때 그는 아마도 바울일 것입니다. 그는 가장 최고의 지점에 놓여있는 상태를 언급합니다. 즉 인간 의지에 달려있는, 사랑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여지는 행위이 헌신의 상태가 최고 지점에 놓여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물질-모든 것으로 구제하고-과 육체-내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를 포기하는 정도의 헌신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사랑없이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영혼을 자신이 꽉 지키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정의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혜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4-7]
여기에서 오래참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악한 행위에 대해서이고, 온유한 것은 선한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참됨을 싫어하지 않고 혹은 남이 잘못된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지 않는 것으로 사랑의 내외적인 모습입니다.
또 사랑의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는 것은 사랑의 조심성을 보여줍니다. 다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는 것은 사랑의 이타성을 드러내줍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부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까지는 절들이 교차되어 서로 대답을 하여 주는데, 즉 성내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견디는 미래성과,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는 과거성과,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현재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여 다음에 나오는 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사랑의 영원성[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용하는]을 잘 드러내어 줍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은 우리의 언어와 믿음과 헌신의 생활에 필요한 요소입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절제있게 하며, 우리의 온유한 성품을 타인에게 드러내주고, 타인을 향하여 예의와 절제의 삶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용하여 온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사랑은 언제까지 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은 사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원뜻이 있습니다. 분명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길 원합니까?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에서 성공하길 원합니까?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언어생활이 온전하길 원합니까? 사랑 만이 가능합니다. 갈2:20에 보면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머물면서 믿음생활해가는 삶을 소개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와같이 기독학생들은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돌아가신 십자가의 사랑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자기관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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