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설교본문

구원 얻을 말씀

아론33 2009. 3. 16. 16:50

구원 얻을 말씀-A message which will be saved

                                          Acts11:13-18.

    본문의 배경을 살펴볼려면 10장에서부터 오늘 읽은 18절까지 내용을 배경으로 기록된 말씀인데 특히 베드로가 고넬료의 말을 인용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에게 보고할 때 재 인용한 내용입니다.

    가이사랴에는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대 그의 신분은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였습니다. 또 그의 영적인 삶의 형태는 경건할 뿐만 아니라 온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던 면모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제 하루는 제 구시쯤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문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용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서 이 일들을 고하고 욥바로 보내었습니다.

    때는 베드로 역시 욥바에 있는 시몬 피장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였었는데, 그의 생활도 역시 기도하는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할 때에는 여느때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았고,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또 소리가 있어 가로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런에 베드로의 고백속에서 한 그룻속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ʿο δέ Πέτρος ʾεΐπεν Μηδαμως κύριε ʿοτι ούδέποτε ʾέφαον παν κοινόν[κοινός σύν-with, together에서 유래 공통적인, 일반적인, 평범한,세속적인, 더러운, 부정한, 일반적으로, 욕되게, 속된, 1.communal, common 2.of that which comes into contact with anything and everything, and therfore common, ordinary, profane-세속적인 이교적인 사교적인,Profanity 신성모독 불경, 모독적인 언행] και ʾακάθαρτον [ʾακάθαρτος impure, unclean 1. in the cultic sense, that which may not be brought into contact with the divinity  2.as the ceremonial meaning fades, the moral sense becomes predominant sinse Is6:5/א󰗭�󰖮�־מ󰘞�   י󰗉�󰗿�אָ ם󰖹�󰚔�󰘩�󰚉�־א󰗭�󰚚� שׁיאּ י󰗑�   י󰗜�־יוֹא]. 한대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시는 내용이 세번 있을 후에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라갔다[14-1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베드로는 환상에 대한 의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의심하고 생각했다고 베드로의 심경을 성경 기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심했다는 것은 διηπόρει VIIA-ZS διαπορεω 매우 당황하다, 어쩔줄 몰라하다. 심히 당황하다. 근심하다, 의혹하다, 의심하다. to be greatly perplexed.라고 적용할 수 있으며, 생각했다는 것은 διενθυμουμένου  VPPNGMS διενθυμέομαι 숙고하다, 반성하다 περί τοΰ /ʿοράματος ʿόραμα ατος τό in our literl(ly) of extraordinary visions, whther the person who has the vision be asleep or awake. 1. vision 2. the act by which the recipient:n.a.receiver of the vision is granted a vision, or the state of being in which he receives his vision. 그의 심경은 참으로 당혹 스럽기도 하고 그 비젼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구원얻을 말씀  행11:13-18.            050298. 양천중앙교회 청년회


    지금 읽은 본문은 10장의 내용과 연관하여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전장에서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강림의 사건을 목도한 후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교제하며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는 파격적인 것으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기들 만의 하나님이라는 편협한 선민의식과 민족 우월주의 때문에 유대 기독교내에서도 복음 전파에 큰 장애가 되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을 주님께서는 고넬료와 베드로라는 인물을 설정하여 역사하심으로 기독교 복음의 세계주의적 성격을 보이셨으며, 또한 복음이 한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열방  모든 족속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베드로의 설교와 고넬료가에 임한 성령강림 사건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히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 당시에 성취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장 8절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도행전을 지리적으로 분석하여 문단을 나우어 보면 예루살렘에서의 선교[1:1-8:3],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선교[8:4-12:25], 땅 끝까지 이르는 선교[13:1-28:31]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데, 특히 10장은 사도행전 전체내용에 있어서 선교사상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하는 교량적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고넬료 가정의 구원은 13장 이후의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 임을 성경을 읽는 독자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 당시의 정치, 사회, 종교적인 관계를 살펴볼 때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실현 불가능한 사회였습니다. 우선 종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베드로는 피 지배국의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그에게 있어서 유대주의적 선민의식은 이방인 고넬료을 접촉하는 것 자체가 종교적 전통상으로 금기시되었기에 만남이 불가능할 수 밖에 없었므며, 특히 유대민족에게 있어서 정복민인 로마의 군사 관료인 고넬료를 만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현실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관점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불가능 했던 또 하나의 사실은 고넬료는 로마군인으로서 피지배 계급인 유대인들을 면담할 기회는 행정적인 필요가 있을 때 뿐이고, 그것도 매우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만 한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장벽을 제거하기 위하여 쌍 방향에서 역사하시어서 저들의 정치, 사회, 종교적인 통념을 깨뜨리고 복음의 위대한 능력과 방향을 설정하여 복음의 사역에 있어서 유대주의 적인 편엽한 사고를 가지고 있던 사명자들의 사기를 새롭게 振作;떨쪄 일으킴, 또는 일어남-시키사 복음전도의 방향을 세계로 돌리는 위해한 역사를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전도의 과정을 살펴보고 구원얻을 말씀의 내용을 살펴본 뒤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시대적인 사명은 무엇인가? 을 살핀후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우선 고넬료의 신분과 신앙을 살펴보면 그는 가이사랴 사람으로서 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된 이달리야대라는 군대 백부장으로 지금의 중대장 정도의 위치로 보시면 되겠는데 가이사랴는 그 당시에 정치의 요지였습니다. 당시 가이사랴에는 총독의 관전가 있었으며,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였던 곳으로 유명한데 그곳에 고넬료는 하급 지휘관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은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제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10장 초반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교 신앙에 관심을 갖고 출석하는 이방인들 가운데는 두 부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부류는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이교 나머지 한 부류는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회당의 예배에 참석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넬료는 이중에서 후자에 속한 신앙인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중에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청하여 구원 얻을 말씀을 들으라는 지시를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즉시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하여 그의 종 두명과 그의 부하 중에 경건한 사람 하나를 택하여 모두 셋을 욥바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 보냈습니다. 저희가 이틀 길를 간 후에 사도 베드로도 주의 환상을 접하게 됩니다.  10:9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베드로는 습관을 따라  [시55:17/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리시로다/단6:10]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 중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게됩니다. 

    환상의 내용이 11절에서 13절 까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데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떵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레11장 신14:3-20]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있은 후 베드로는 심히 근심하고 당황하였으며, 그 환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던 중 고넬료의 가정에서 파송된 사람들에 의하여 그 환상의 실마리를 듣고 초청함을 받아 고넬료의 가정에 들려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 베드로가 설교하는 중에 고넬료의 가정 모두에게 성령이 임하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고 베드로는 이 사삼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다고 진술함으로 복음안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허물어져 버린것을 인정하였음은 물론 복음의 세계주의적 포괄성을 인식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설교의 내용이 오늘 구원얻을 말씀의 핵심 내용이 됩니다.


설교의 내용을 살펴보면 베드로는 큰 사실을 우선 발견합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깨닫고 감탄하게 되는데, [34-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 합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가 그에게 있어서 감탄스러웠던 이유는 그 동안 유대교적인 입장에서의 기독교 복음 사역에 충실하였던 베드로의 사고가 전환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외모’라고 하는 것은 영어성경[NIV]에서 ‘편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분명 복음의 전파에 있어서 예루살렘에서 유대만의 편협한 복음이 아닌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땅끝까지 이르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이 사건을 통하여 나타내셨으며, 그 가능성을 보이신 것입니다. 분명 주님은 유대인 만의 편협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라 온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시는 공평하신 분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긍휼이 여기심으로 구원을 허라하셨기에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 앉아 주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그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은 장벽을 넘어서 고넬료에게 전해진 것과 같이 우리들에게도 시대적인 장벽과 정치적인 장벽을 넘어 우리에게 들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에 빚진자란 사실을 늘 기억함이 아름답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설교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저들이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아 주의 사람들이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설교의 내용[10:34-43]을 살펴보면 그 해답을 명료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설교를 보면 복음의 기능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선 그것은 화평입니다.  복음이 올바로 선포되는 곳에 모든 장벽을 넘어서 화평이 찾아 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 사이에 있었던 이방인과 유대인이라는 뿌리 깊은 감정의 골, 또는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사이에 있었던 민족간의 적대감정이 화평의 복음으로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들은 우리들도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형제와 자매 사이에는 알력을 해소할 수 있으며, 이 화평의 복음을 통하여 평강을 잃어버리고 상처받은 심령들에게 화평과 평강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증거한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 역사의 한 시점에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에 바로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 분이 유대 땅에 두루 다니시면서 하신 일은 착한 일을 하시면서 병든자를 고치시고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을 치료하시며, 회복시키는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나무에 달려 모든 족속의 저주를 감당하사 장사 지낸지 3일 후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사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런 연후에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전도를 명하셨다고 베드로는 설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에 덧붙이기를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 들도 증거하였던 바 그들의 선포 내용은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선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 두 명의 선지자를 예로 든다면, 예레미야 31:34절에 보니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한 사실과 이사야서 53장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라고 기록함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를 통하여 성취 되어진 사건을 보았고 증거하였다고 선지자들의 죄사함의 증거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전했을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했음을 10:4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므로 당당히 그리스도의 일원으로 초대되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세계주의적 보편주의적 관점이 완전히 성취가 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방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 복음의 보편주의적 관심은 사도행전 뿐 아니라 구약전체의 내용에 드러나 있습니다. 이는 창12:3-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는 말씀의 지속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출애굽 사건 때 중다한 잡족들이 히브리인들에 연합했음을 그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출12:38], 또한 롯과 같은 모압여인, 멜기세덱, 욥과 같은 굵직한 신앙 인물들은 모두 이방인들이였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역사를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였던 팔레스타인은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잇는 교량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줄기차게 이방 선교에 대한 예언이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증거되고 있는데,이에 대한 성취가 오늘 고넬료 가정의 성령 강림사건을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이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은 화평과 구원의 복음으로 철폐되었습니다.11:18절에서 기록된 것과 같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는 고백으로 유대 기독교인들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비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믿고 회개하여 그 이름을 의지하여 세례를 받을 때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복음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어두운 시대의 방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힘써야 될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우선 기도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고넬료와  베드로가 기도한 것과 같이 기도가 절실합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형제와 자매를 위하여 기도하고 자신의 영적인 문제들과 그리스도 앞에서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이 것이 복음증거의 첫 번되는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증거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매주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이 복음의 올바른 증거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복음 증거의 사역을 감당함에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려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될 때,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들을 때 주님이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젊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신앙과 지성이 있습니다. 이 젊음, 신앙, 지성을 가지고 복음 사역을 위해 믿음의 경주를 함으로 한 시대을 움직이는 주의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시다. 왜 입니까? 주님이 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은 복음을 통하여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있었던 반목;서로 못 사귀어 미워함-과 분열을 치료하셨습니다. 또한 이 복음을 통하여 세계 땅끝까지 선교할 수 있도록 당시의 사도들에게 신학적이 근거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였습니다.  이제 이 일이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선교의 적기입니다. 세계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시대로 급속히 변모하면서 우리는 전자매체를 통하여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길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 않으면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심판주로 오실 주님에게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국가적으로 어려울 때를 맞이하였기에 복음이 절실해졌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나태한 신앙을 일깨웁시다. 그리고 부흥의 불길이 우리에게 타오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기에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면 주님은 함께하사 우리의 젊음을 사용하시는 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