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5 은혜로 은혜로 롬15:14-21.
은혜는 그리스도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모든 구원의 은총을 말합입니다. 그리고 은혜는 죄와 정반대 방향에 서 있습니다. 죄는 인간에게 분열과 죽음 그리고 온갖 범죄를 양산하는 기능을 감당하고 종국에 가서는 파멸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죄가 인생을 지배하면 그 인생은 탐욕의 노예가 되고, 죄가 한 단체를 주장하면 집단오류에 빠져 파멸에 이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러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음욕에 사로잡힌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임하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몰려와 하나님의 사자들을 폭행하려 들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였습니다. 결국 탐욕과 음란에 물들어 있는 소돔과 고모라는 어떻게 멸망합니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유항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는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관심과 사역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도록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있는 곳에는 회복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화합과 일치가 있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이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그리스도인들을 주장할 때에 개인이나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공동체에게 임할 때에 그리고 개인에게 임할 때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본문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경우를 먼저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14절과 15절을 통하여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기독교 공동체의 이상은 과거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1). 처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됨으로 있는 자나 없는 자 차별이 없이 모두 유무상통하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주장하는 교회는 위화감이나, 열등감, 교만이라고 하는 공동체의 암적 요소들이 설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교회는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는 신앙중심의 공동체였고, 그리고 모이면 오늘날 교회들과 같이 냉랭하고 무관심한 교회가 아니라 성전에서나 집에서 만나면 기쁨이 있고 교제가 있는 살아있는 유기적인 공동체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언제나 열려있으므로 찬양하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이며, 삶에 에너지가 충만한 그러한 교회였습니다. 그러한 교회에 주님이 함께 하시어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입니까?
바울도 로마교회가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델을 닮아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4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 될 것을 확신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성도나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칩니다. 한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였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중보의 기도와 말씀의 교육 그리고 교회와 성도의 지속적인 관심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신앙생활한 사람들이 처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열린 마음으로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합니다.
오늘 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큰 교회들의 구성원들의 면면을 가만히 살펴보면 기득권층이 절대로 처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를 저는 허다하게 보았습니다. 처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갓난아이 같아서 조금만 섭섭하게 하면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목회자는 그러한 신자들을 끌어않기 위하여 기존성도들보다 우선적으로 대화와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납니까?
생각이 좁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추한 나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셨다는 사실을 생각 속에서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공부하는 것을 빠른 시일에 잃어버리듯이 은혜만큼 금방 쏟아 부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은혜 받을 때에는 모든 것을 포용할 듯이 마음이 넉넉하지만 은혜가 떨어져 마음이 좁아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고민하고, 미워하고, 멀리하고, 돌아서 버립니다.
은혜는 열린 마음을 가진 심령에 오랫동안 머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가 인정하고, 위로하고, 하나될 때 배가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살핀 대로 로마교회내도 이러한 미성숙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즉 강한 자와 약한 자 상호간에 판단하는 신앙적인 공방전이 있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사도바울이 지적한 대로 상당한 정도의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중재하기를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하라고 이야기했으며, 서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저버린 교회나 성도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여 올바로 서면 선함이 가득하게 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면함으로 새롭게 세워질 것을 확신한다고 사도바울이 로마교회의 미래를 낙관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사도바울이 지금까지 서신서를 기록(15)하였다고 이제 서신서의 결론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불신앙적인 요소들을 극복하여 서로를 세우는 일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선함이 가득한 공동체가 됩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으로 가득차는 그러한 아름다운 교회가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개인에게 임하면 어떠한 일들이 나타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개인에게 임하면 어떠한 일이 나타나는지 바울의 경우를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유는 바울이 자기 자신의 문제를 은혜와 결부하여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군이 됩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은혜를 받아야 가능합니다. 자동차에 연료를 주입해야 움직일 수 있듯이, 사람이 음식을 먹어야 일을 감당할 수 있듯이 교회일도 은혜를 받아야 올바른 분별력과 추진력을 가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의 사역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가 받는 은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며(요1:16)2), 특별히 그 중에도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을 증거할 때 확실하게 임합니다3).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경이 사실은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성경이든 그리스도에 관계된 것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것으로 읽을 때 그 성경을 잘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내용으로 전개 되였기 때문입니다4).
본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자랑하는 사도바울도 일찍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의 인생방향을 완전히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본래 기독교를 핍박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큰 빛)을 만납니다. 생명의 빛에 조명5)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시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행26:15-18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난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이 만남과 지시를 통하여 자기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온전히 헌신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헌신된 일군이 된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즉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헌신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볼 수가 있는데,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전도의 사역과 예수의 일군(복음의 제사장 직무)이 되었다고 술회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자랑스럽게 여긴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목숨을 걸고 바울은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6).
16절에서 18절까지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 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큰 은혜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일군으로서 자기의 사역이 복음과 관련된 직무였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어 순종함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의 사역에 주님이 직접 개입하시어 지혜로운 말씀의 은사와 일에 민첩함과 표적과 기사의 능력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 하시었다고 기록합니다. 사도바울은 실질적으로 복음의 중매인이였습니다7). 사람들은 결혼정년기가 된 남녀에게 중매를 잘하면 갈비가 세대요 중매를 잘못하면 뺨이 세대라고 하는데 사도바울은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매를 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을 태장(苔杖)8)으로 맞고 한 번은 돌로 얻어맞고 세 번 파선(破船9))하여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여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으면 주님의 일군으로 온갖 수고를 다했습니다. 왜 그렇게 바울이 복음의 사역에 헌신하였겠습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에 입각하여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일군으로 수고하면서 사선을 넘나드는 진정한 헌신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과 시련의 불 가운데서 바울은 오히려 자기가 세운 교회를 걱정하고 애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10). 참으로 귀한 믿음의 선배입니다.
그리고 그는 복음을 증거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으며 그 와중에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외쳤11)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끝내 순교의 제물이 되어 하나님 앞에 간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이토록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가장 확실하고 의미 있게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하여 그 의미를 한 올이라도 빼지 않고 온전하게 전한 사람입니다. 만일 기독교를 설명함에 있어서 사도바울 없이 기독교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바울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일군이요 중매인이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은혜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한 지역에서 안주하면서 복음의 일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자신이 갈 수 있는 모든 지역에 나아가 편만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복음사역에 방해를 주거나 부담을 주지 않고 복음의 불모지, 정착 그리스도가 절실히 필요한 곳을 선택하여 복음의 신실한 일군이 되였습니다. 이졔 19절부터 21절까지를 읽어봅시다.
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자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1:8에 있는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대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이후 3차례 걸쳐 유럽전역에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주로 육로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과 같이 잘 발달된 무역로을 통하여 바울은 복음을 왕성하게 증거하였습니다. 로마의 주요도로는 약50,000마일(1마일은 1609.3m)마일이 되고 또한 2급도로는 주요 도로의 4배(약2000,000마일)나 되었다고 합니다. 주요도로는 모래와 자갈층으로 3피트(1피트는 30.48cm) 또는 그 이상의 깊이에까지 기초를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도로의 너비는 20피트로 사도바울의 모든 여행들은 그러한 도로를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바울이 살던 지중해 세계는 한 기항지예서 다른 기항지로 화물을 싣고 오가는 배들로 분주하였는데 그 당시에 무역선에다 승객들을 승선시키는 일이 비교적 흔하였으므로 바울은 해로를 통하여 주님의 복음을 편만하게12)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거 함에 있어서는 분명한 원칙이 있었는데, 그것은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한다는 철칙입니다. 우리 한국사회에 기독교 인구는 90년대 이후 신도수가 정체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것은 어떠한 교회는 개척한지 얼마되지 않아 몇 백명 몇 천명 심지어 몇 만명으로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부흥을 올바른 부흥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교회의 성장이 수직적인 성장이 아닌 수평적인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의 원칙론적인 사역으로 진단해 볼 때 우리 한국교회가 깊이 반성해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만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 했다면 좀더 편하게 쉽게 복음을 증거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의 초점을 맟추었습니다. 토지로 말하면 경작지가 아닌 불모지, 황무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바울이 영적인 불모지를 선택하였기에 필연적으로 그에게 거센 반발과 핍박이 더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능히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될 줄을 믿고 신앙의 불모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극한의 고난과 환난 속에서 자족의 삶을 살면서 자신은 낮아지고 하나님은 높이는 겸손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고전15:109-10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요, 은혜 받을 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은혜로 선함이 가득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차서 처음 교회와 같이 살아있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유무상통하여 가진 자나 못가진자가 편벽 됨이 없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 존경하고, 위로해주는 그러한 하나님의 친교가 있는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받은 은혜가 빗나간 화살과 같이 되지 않으므로 사도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충직한 일군이 됩시다. 은혜만 높이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리해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 행2:43-47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3) 행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4)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눅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32절 참고.
5)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6)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7)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8) 태장(苔볼기칠태 杖 지팡이장) 매로 볼기를 치던 형벌. 볼기 / 뒤쪽 허리 아래 허벅다리 위 좌우쪽으로 살이 두둑한 부분.
9) 파선(破깨뜨릴파船배선) 배가 풍파로 인하여 깨어짐 Shipreck
10) 고후11:28-29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11) 빌2:17-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12)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완결짓다. 복음을 채웠노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완성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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