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롬14:5-12 날에 대한 교훈

아론33 2009. 3. 16. 16:32

    로마서 32강  날에 대한 교훈  롬14:5-12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날들이 어떠한 날입니까?  결혼식, 생일, 설, 한갑 또는 칠순 어떠한 날입니까?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날은 어떠한 날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주일입니다.   주일은 모든 일들을 제쳐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또한 안식하는 날입니다.

  구약에 안식일과 신약에 주일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6일만에 창조하시고 일곱째 되는 날에 안식(安息)1)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육신적으로 쉼을 얻고 삶에 원기를 돋우는 생활의 쉼터이요, 영적으로 보면 거룩하게 될 수 있는 영성개발의 시간이요, 삶에 복을 힘차게 일구어 가는 아름답고 복된 날입니다. 


  구약에 안식일은 한주의 마지막 날로 지겼는데 그의 성격을 몇 가지로 알아봅니다. 

  첫 번째 창조기념일입니다. 구약에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 만들어 놓으신 창조기념일입니다.    구약에 성도들은 이 창조기념일을 지키면서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도록 삼라만상을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2).   그리고 가깝게는 가정을 보면서 멀리는 온 우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구약에 성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부족하여 땅들아 찬양하라, 바다야 찬양하라고 힘차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시148:5)고 그 당연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입으로 찬양하는 것이 부족하여 온 악기를 가지고 찬양하며, 손벽을 치면서, 춤을 추면서 찬양하자고 주장하며, 호흡이 있는 자들은 모두다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은 창조기념일인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장 소중한 날로 지켰던 것입니다.

  대부분 세상의 노래는 인간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우리가 부를 노래는 시편 기자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우리의 노래방 기계가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그리해야 우리 영혼이 즐겁고 기쁘게 되는 것이요 우리의 사회가 밝아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방기념일입니다.   구약에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사백년 이상의 종살이와 더부살이를 종식하고 출애굽하여 해방을 얻은 해방기념일입니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독립기념일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광복절 즉 해방기념일이 있습니다.  해방기념일은 많은 나라가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출애굽한 날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도하신 해방기념일입니다.  바로 그 날을 출애굽한 기념일로 지켰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통하여 출애굽 하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기적과 그리고 홍해를 가른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이러한 환희와 기쁨3)이 대대에 이어지길 원하면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안식일을 십계명의 제사계명4)을 통하여 거룩하게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구약의 안식일은 창조기념일과 해방기념일로 지켜졌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절기들도 안식일을 중심으로 하여 지켰으므로 구약에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 어떠한 날보다 귀중하게 여기면서 지켰던 대표적인 날입니다.


  신약의 주일은 구약에 한 주간의 마지막 날로 지켰던 안식일과는 달리 한 주간의 첫날로 지켰는데 그 성격을 알아보겠습니다.

  신약의 주일은 예수님5)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후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주일은 우리 주님의 부활기념일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인에게 있어서는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매주의 첫날을 안식일(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소요리문답 59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레 중에 어느 날을 안식일로 명하셨습니까? 라는 물음에 세상 시초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하나님이 매주의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명하셨고, 그 후로부터 세상 끝날이 될 때까지는 매주의 첫날을 명하셨으니 이 날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 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일의 변경에 대하여 성경과 기독교의 초창기 역사는 다양하게 그 사실을 증거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나타내 보이신 날이 바로 주의 첫날 이였습니다6).  그리고 원시기독교 사회를 지도하였던 사도들도 안식 후 첫날 즉 한 주간의 첫날에 모여 말씀을 강론하고 떡을 떼는 성만찬을 거행하였습니다(행20:7, 고전16:2 헌금). 또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도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함을 입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교회의 영적인 현상을 진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임하므로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그 날도 바로 주일이였습니다(행2:1-4).  그리고 기독교 초창기에 교부들(이그나티우스-기독교인은 더 이상 안식일을 따라 살지 않고 주일을 따라 산다, 져스틴7))도 매주의 첫날을 주일로 지키였던 예수님과 원시기독교 사회의 전통에 따라 주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주일을 통하여 성도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주일에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모여 하나님께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 가운데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일들을 계승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이단 중에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와 같은 종파는 주일의 첫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파들은 성경에서 변경된 안식일 성수의 날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로마교회내에서도 안식일과 주일과 같이 날들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5절과 6절에 나타난 날은 유대인들이 규례에 따라 지키던 절기와 관계된 날들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에 지켰던 대표적인 절기들을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절기로 유월절(무교절)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탈출할 때에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이 강팍하여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보내지 않자 애굽의 장자들을 왕에서부터 말단의 신하는 물론 옥에 있는 죄수들의 맏아들까지 다 죽이시는 엄청난 형벌을 내리십니다.  이 형벌을 당하자 바로는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여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극렬한 형벌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애를 베푸사 그들의 장자들은 모두다 살려두셨습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 절기부터 7일간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 - bread of no yeast)을 먹으면서 애굽에서 급하게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식량으로 삼은 무교병을 먹은 것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무교절입니다.  이 절기는 유대의 종교력8)으로 1월(니산월 / 바벨론식 이름)의 14일 저녁부터 21일까지 지켜졌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첫 이삭을 바치는 날(초실절)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땅의 소산중 첫 이삭을 바치는 날로 보리 추수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바치고 봉헌하기 위한 것으로 유월절 기간 중에 있는 안식일 다음 날 행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리 이삭의 첫 단을 하나님께 바치기 전에는 먹지 않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만물의 진정한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하나의 예식이였습니다.


  칠칠절(맥추절, 오순절)이 있습니다.  칠칠절은 보리의 첫 곡식단을 하나님께 드린 다음 날(유월절의 제 2 일, 니산월 16일)로부터 7주간 지난 다음날 곧 50일째 되는 날(시반월 6일)로 밀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는 히브리 최대의 농경제였습니다.


  나팔절(신년절)이 있습니다.   나팔절은 히브리 종교력으로는 7월 1일 민간력으로는 새해 첫 날인 1월 1일에 지켜졌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새로운 날이 도래했음을 알리고 기쁨으로 새 날을 맞기 위한 안식일의 날로 전국 각지에서 나팔을 불어 기념하였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중앙 성소에서는 새해를 축하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속죄일이 있습니다.  이 날은 종교력 7 티쉬리월 10일에 지키는 절기로 이 날에는 백성들이 금식등으로 스스로 괴롭게 하여 자기의 죄와 제사자의 죄 그리고 성막의 부정 등을 철저히 속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범죄한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속죄제를 드려 바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부지중에 범죄한 경우나 범죄하고도 깨닫지 못한 경우에는 그 죄의 잔재들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속죄일을 통하여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번 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림으로 모든 죄를 해결하던 날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막절(초막절, 수장절)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유대의 종교력 7월 15일부터 한 주간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기간 동안에는 초막을 짓고, 그 곳에 거하면서 출애굽 당시에 광야에서의 장막 생활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이 장막절은 1년 동안 수고한 모든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들이기를 다 마치면서 지키는 절기로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절기중의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약적인 전통에 따르면 이방인들의 절기9)와는 달리 이들은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추수를 하더라도 하나님 먼저. 명절을 지키더라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예배하였으며, 유월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속죄일을 별도로 정하여 놓고 하나님 앞에 혹이라도 범죄하였을까 고심하면서 경건한 삶을 추구하였고, 광야 길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추억하고 앞으로도 지켜줄 것에 대한 확신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신앙이며, 절기입니까?


  이러한 구약적인 전통에 따라 산다면 신약에 복음을 듣고 사는 성도들은 어떠한 혼동이 있겠습니까?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어떠한 자는 이러한 의식적인 법이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자유함을 얻었다는 확신 아래 모든 날들을 같은 날로 여기면서 하나님 앞에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살았을 것이고, 반면에 어떠한 사람들은 구약적인 전통에 따라 어떠한 날은 소중하고 어떠한 날은 덜 소중하게 생각하는 차별화된 날들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또한 주일문제도 대표적인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일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만 믿음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모든 날이 같은 날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성숙한 신앙과 비성숙한 신앙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대립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진영에서는 갑론을박(서로 논박함으로 결론을 못짓는)식, 평행선을 긋는 식의 말다툼과 사소한 대립으로 분열되는 현상이 있었을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리한 소모전이 로마교회내에 끊이지 않았을 것이기에 오늘 사도바울은 그러한 일들을 종식시키고자 글을 쓰는 것입니다.  

   우선 사도바울은 날을 중심으로 한 대립이 로마교회에 있는 현상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지적합니다. “ 혹은(one man)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라고 그러한 현상을 인정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고 촉구하면서 자기 마음에 확정한 대로 거할 것이지 날에 대한 남의 신앙적인 가치관을 나의 가치관과 판단 아래에 억지로 잡아매지 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살다가 보면 남과 사소한 말다툼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부간에 나타납니다.   결혼 전에 대부분 소심하고 청순한 사람은 대범하고 야성이 강한 사람을 볼 때 매력을 느낍니다.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 한 가족을 이루니 얼마나 많은 말다툼과 갈등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그 얼마나 극과 극을 이루어 갑니까?  그러나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치료법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서로를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의 서두에서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하나님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중히 여기니 정죄하고, 판단하고, 교회 안에서 분열할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날을 중심으로 하여 상호간에 다툴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7절과 8절을 통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통렬(痛烈 몹시 맵고 사나움)하게 지적합니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의 생명이 사는 것이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고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서 다하는 것도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주님께로 가는 것이니 삶의 초점(focus)이 흐트러짐이 없이 하나님에게 맞추어져 있고, 우리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날에 대한 다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삶에 자세가 분명히 서 있다면 날에 대한 갈등은 당연히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과 공방전은 하나님도 편들어 주실 수 없는 싸움입니다.

  이것을 결혼생활과 비유하면 부부가 가정을 위해서 서로가 가진 성격대로, 가치관대로 가정을 위해서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월권하거나,  강제로 자기의 가치관을 따를 이유가 없으니 갈등을 조장하는 지리한 싸움을 종식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부의 싸움은 양 부모님도 내 딸이 잘났네, 내 아들이 잘났네 편들 수도 없습니다.  왜입니까?  가정을 위해서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9절부터 12절을 통하여 이제는 지리한 갈등에 사도바울은 쇄기를 박아 공동체의 건강을 해치는 싸움을 종식하라고 명령합니다.    즉 입법자와 재판장10) 그리고 집행자가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서로간에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마지막 때에 온 인격적인 피조물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 때에는 영원한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심문하시고, 선악간에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 판단을 생각하여서라도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 최고라는 식의 근거 없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로마교회가 건강한 공동체, 아름다운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사실 때에 그 누구도 정죄하시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율법에 충실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 많은 회중과 예수님이 계신 정 가운데 세워놓습니다(요8:1-11).  그리고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즉 율법에 의하면 이 여자를 정죄하여 죽여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들로부터 젊은이까지 모두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예수님과 간음 중에 잡힌 여자(현행범)만 남게됩니다.   주님은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뿐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도 당신을 향해서 침을 뱉고 저주하며, 창을 찌른 자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용서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즉 그들을 모두 포용하신 것입니다.


  결론하여 말씀드립니다.  오늘날에 대한 교훈을 통하여 우리는 안식일과 주일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적인 절기들에 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모든 날들을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날들과 절기들의 교훈을 통하여 시간에 대한 가치관을 올바로 가질 필요가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분명 날들과 시간도 온 우주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물인 모든 시간이 귀중하고, 보배롭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까?  돈을 아끼듯이, 물을 아끼듯이, 전기를 아끼듯이 아껴야 합니다11).

  그러나 시간에 대하여 지나치게 해가 되도록 집착하면 남에게 해를 주어 오늘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은 날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 어떠한 사람은 이 날보다 저 날을 귀하게 여겼고, 어떠한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것에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우월감을 가진 자들 앞에 날에 대한 차등성을 가진 다른 무리들은 똑같이 서로를 적대하면서 공동체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바울은 어떠한 처방전을 내립니까?  일단 상호간에 주를 위한다는 공동의 정신이 있으니 갈 등의 소지를 불태우라고 명령합니다.  또한 날 가운데서 사는 삶의 목적이 주를 위한 것이 분명하니 서로를 적대시할 이유가 없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로를 판단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이 진정한 재판장이시지 너희가 상호간에 정죄하고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말로 쇄기를 박습니다. 

  오늘 로마교회의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의 공동체는 어떠한 공동체로 거듭나야 합니까?  용서하는 공동체, 예수님과 같이 포용하며, 이해하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1) 창1:2-3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2) 시149: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찌어다.


3) 출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4)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5) 주님의 탄생을 전후로 하여 B.C.(Before Christ), A.D.(라틴어 Anno Domini : in the year of our Lord).


6)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20:26 여드레를 지나서


7)  사도들의 계승자이면서도 교회에 정통성을 가지며 교리를 건설하는 자.


8) 유대의 종교력 바벨론력 1월 유대의 종교력 니산(태양력3-4월), 2월 이야르(4-5), 3월 시완(5-6), 4월 탐므즈(6-7), 5월 아브(7-8). 6월 엘룰(8-9), 7월 티쉬리(9-10), 8월 말케쉬반(10-11), 9월 기슬래(11-12), 10월 데벳(12-1), 11월 스밧(1-2), 12월 아달(2-3).   유대력 7월은 아빕 8월은 시브 1월 에다님 2월 불.   종교력은 하나님께서 새로 제정해 주신 것.  민간력은 유목민인 히브리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민간력의 첫달은 이른 비가 내린 후 곡식을 시작하는 달이고, 마지막 달은 경작물 중 가장 늦은 소출을 맺는 포도의 추수를 마치는 달이었다. 

  한국은 태양력과 태음력을 사용한다.  태양력 또는 양력(신력)은 지구가 해의 둘레를 일회전하는 동안을 1년으로 하는 달력.   태음력 또는 음력(구력)은 달의 한 삭망을 기초로 하여 만든 책력 한 달은 29일 또는 30일로 하고 1년을 열 두 달로 하여 19년에 일곱 번 윤달을 둠.   윤달은 윤년에 드는 달로 태양력에서는 2월이 평년보다 하루 많고, 태음력에서는 평년보다 한 달을 더하여 윤달을 만듦.


9) 봄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여름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가을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겨울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10) 약4: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랴.


11)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