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36 신령한 것과 육신의 것 롬15:22-33
사람은 상호간에 서로 도와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분리되어 살 수 없기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각 사람은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사회의 각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때에 그 사회가 발전하고 좀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개인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육신적인 노동으로 하수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아침 일찍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쓰레기를 청소하는 아저씨나 식당에서 분주히 쉴틈없이 접시를 닦는 아줌마의 손길이 모두 소중한 사회일원입니다. 또한 정신적인 노동을 하면서 높은 빌딩의 잘 정돈된 사무실에 앉아서 결재를 하는 사람이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 연구소에 앉아서 인류의 희망찬 미래를 열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연구원들도 역시 한결같이 소중한 우리 사회의 일원입니다. 이유는 육신적인 노동이든 정신적인 노동이든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회적 구성원이기 때문이며, 서로를 돕는 관계이자 상호보완적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은 육신적인 노동과 정신적인 노동과 함께 영적인 노동을 하는 신령한 성격의 일입니다. 즉 말씀의 사역과 기도의 사역 그리고 선교와 구제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맡기신 영적인 신령한 사역을 감당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노동, 정신적인 노동, 영적인 노동이 어떠한 차별과 구별이 있고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으로 분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결같이 차별할 수 없는 소중한 노동입니다. 이유는 각기 고유한 영역에서 일함으로 자기생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올바르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노동에 대하여 전혀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되리어 노동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죄있는 것으로 지적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동하는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도 일하시니 당신도 일하심을 적극 부각시키기도 하셨습니다(요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족을 보면 가장의 신성한 노동을 통하여 온 가족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안락한 삶을 영위합니다. 요즘 구제금융 사태 이후에 구조조정이라는 절대절명의 국가적, 기업적인 과제 앞에 머리 숙인 남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제 실업자 100만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직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일거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릅니다. 지금 많은 가족의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면서, 고단한 삶을 살고있는 현실을 볼때에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실직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국가적으로 사회적인 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구조조정의 갈등과 마찰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찌하든 우리 가족의 가장인 우리들이 현재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가장의 일로 인하여 최소한의 행복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질서 있게 운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으로 모시고, 우리 영혼의 구제를 위하여 하나님의 진실한 일꾼 되신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역이 있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생의 기쁨과 감사의 노래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우리 영혼의 안식을 위하여 머리둘곳 없이 바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2). 또한 그러한 사역 중에도 오늘 제목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신령한 사역을 도운 사람들이 몇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육신의 소유로 주님의 영적인 신령한 사역을 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도왔지만 그 중에 특별히 기억되는 이름은 치유를 얻은 마리아와 그리고 부유한 집안의 요안나와 수산나가 있습니다3). 또한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질 때 체력적으로 약하시사 감당하시기 어려울 때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갔습니다4).
이러한 믿음의 조력자가 있었기에 주님은 이 땅에서 효과적으로 전도의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었고, 영혼의 구원사역을 능히 감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주님의 영적인 사역을 위하여 육신의 것을 가지고 헌신적인 협력자가 있었기에 주님의 부활은 더더욱 찬란한 것이였고, 값진것이였으며,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께서 이루어놓으신 구원의 열매를 같이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 영혼이 평화를 누리고 우리 영혼이 나음을 입게 것입니다.
구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에 보면 신령한 사역자 엘리사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수넴이란 지역에 이르자 그곳에 한 귀한 여인(재산이 풍부한 여인)이 엘리사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자기 집과 같이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가 영적인 신령한 사역을 가당함에 있어서 육신적인 것으로 시달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먹이는 것이 분량에 차지 않았던지 남편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열하4:8-10.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게 합시다”라고 제안하여 엘리사는 그 부유한 집에서 육신적인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를 해결 받아 타락한 시대에 영적인 신령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훌륭한 사람 곁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았던 조력자가 있어왔습니다. 예수님의 곁에도, 선지자의 곁에도 언제든지 훌륭한 조력자가 있어왔습니다.
사도바울도 사실 알고 보면 많은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뵈뵈라는 사람은 바울의 진정한 보호자였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던 진실된 부부였습니다. 안드로니고라는 사람은 바울과 같이 옥중에까지 함께 동행한 믿음의 훌륭한 조력자이었습니다. 또한 바울 주변에는 든든한 사업가, 재력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자주빛 나는 명주를 파는 루디아가 있습니다. 그녀는 물질적으로 조력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 집을 바울의 사역지로 기꺼이 제공하였습니다(행16:14-15). 갈라디아 교인들은 사도바울을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고 또한 할 수만 있었더면 눈이라도 빼어줄 수 있을 정도로 사도바울의 사역에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조력하였습니다(갈4:14-15).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바울의 주옥과 같은 말씀과 영향력 있는 사역을 성경을 통해서 확실히 묵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 앞에 헌신한 사람들을 측면에서 감당할 수 있도록 조력한 사람들이 있어왔던 것은 주님의 사역이 너무나 소중하였고, 그 사역에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귀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순수한 동기에 의하여 주님의 사역이란 대의명분하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육신의 것을 가지고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그러한 아름다운 사역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신령한 것을 나눠가진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도운 것입니다. 그들의 도움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발적인 순수함과 짐을 서로 나누어지겠다는 형제애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또한 사도바울도 예루살렘 교회와 마게도냐, 아가야 사람들의 상호부조를 예로들어 간접적으로 우회하여 로마교인의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로마교인들의 도움을 통하여 마지막 선교목적지인 서바나로 가기를 원합니다. 우선 순서적으로 예루살렘 성도들과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 성도들의 상호도움을 예로들어 사도바울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어떠한 도움을 청구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25절부터 29절까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루살렘 교회에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큰 핍박이 일자 모든 성도들이 각지에 뿔뿔이 훑어지게 됩니다5). 그런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천하에 큰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행11:27-30). 그 당시에는 모든 먹는 것이 기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농업생산품이였기 때문에 천하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삶에 그만한 어려움이 가중되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가는 오르고 수입은 적고, 인심은 흉해졌습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채무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지금 시대와 비숫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들이 각지로 훑어짐으로 재정적으로 빈약하여 가난한 성도들을 도울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였고, 엎친 데 덮친격으로 천재를 당하여 교회의 수입은 반에서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더욱이 그 당시 모든 사회가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팽배하여 있던 터라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 예루살렘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영적인 빛을 진, 예루살렘 교회의 선교로 인하여 복음을 접하게 된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간과하지 아니하고 성도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육신의 것 일부를 가지고 얼마를 동정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짐을 져준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포화상태라서 거리면 거리, 골목이면 골목, 심지어 한 상가 안에 경쟁적으로 교회들이 들어섭니다. 얼마나 기형적인 모습입니까? 서로 도와야 할 교회가 아닌 서로 경쟁해야될 안타까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교회도 고급화되고 대형화되다 보니 성도들도 작은 교회는 교회로 보지않습니다. 또한 헌금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전혀 자기의 땀방울과 피가 섞이지 않은 교회에 들어가 주인행색을 하려고 하니 얼마나 교회에 갈등과 대립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마당에 예루살렘 교회의 신령한 것과 이방지역의 육신의 것을 가지고 상호 협력하는 모습은 참으로 현재 우리들의 교회에 귀한 귀감이 됩니다. 이렇게 상호간에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운 미덕이 됩니다.
또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도울 때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아니하고, 기쁨 마음을 가지고 당연히 도왔습니다6). 여기에서 우리는 헌금을 하거나 남을 도울 때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헌금이나 기부하는 사람은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기쁜 마음으로 의당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7). 예수님의 주변에 있었던 여인들과 같이 열심을 가지고 자발적인 심령으로 육신적인 것을 가지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엘리사을 섬겼던 수넴여인과 같이 분명하고 합당한 지식을 가지고 신령한 사역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도바울의 주변 사람들과 같이 복음의 훌륭한 조력자와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기쁜 마음으로 도와 환난과 시련의 시간들을 극복하였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서로가 도울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 신령한 사람은 신령한 것8)으로 육신적인 것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신령한 사역에 동참되어 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이 있을 때에 썩어질 육신을 위해 심지 않고 성령을 위해 심어 영원한 가치를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9). 이와 같이 육신의 것과 신령한 것을 가지고 서로를 도울 때에 그곳에 아름다운 기독교의 미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성도들의 도와 준 열매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게 확증한 이후에 로마를 들려 서바나로 갈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갈 때에는 충만한 축복10)을 가지고 갈 것이라 언급합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직접적으로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청구합니다. 우선 사도바울은 로마교인들을 통하여 만족을 받고 서바나로 보내 줄 것을 청구하면서 일차적으로 육신적인 도움을 직접적으로 청구합니다. 22절부터 24절까지 보겠습니다.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
지난주에 설교를 통하여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19). 사도바울이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방의 구체적인 지역 이름은 에베소, 고린도, 데살로니가, 빌립보, 다메섹 등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 지역에서 복음을 편만하게 증거하였으므로 복음의 사역을 종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복음의 미개척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겠는데 그곳이 바로 서바나라고 언급합니다. 바울은 서바나에 복음의 깃발을 세우기 위해 즉흥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 전부터 계획을 세웠고, 그곳의 복음화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그러므로 서바나를 복음화하기 위해 재충전과 재무장을 하고 떠나야 하는데, 바로 세계의 중심부 로마, 재력이 든든한 로마의 성도들로부터 교제를 나누고 만족을 받은 후 로마 성도들의 보내 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를 중간기착지로 하여 새로운 복음의 불모지, 미지의 세계로 향하겠노라고 꺼지지 않는 복음의 열정11)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치 많은 후원과 관심을 등에 엎고 탐험가가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사모하듯이 사도바울도 그러한 심령을 가지고 로마교회의 후원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로부터 육신적인 도움을 얻고자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성도들이 육신적인 것을 가지고 예루살렘교회를 도운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였고, 그리고 그렇게 돕는 것이 마땅하였듯이 자기도 의당히 그러한 도움을 받고 싶다는 심정을 직접적으로 로마교인들에게 육신적인 도움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령한 사역에 육신의 것을 가지고 도와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죄로부터 벗어나 자유함을 얻었다면 그 자유를 증진하고, 타인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우리 육신의 것을 가지고 신령한 사역에 투자하는 하나님 나라의 투자가가 되어야 합니다12). 우리 교회가 진정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다고 생각이 되어진다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펀드매니저 되신 예수님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또 2차적으로 신령한 도움을 로마교인들에게 직접 청구합니다. 30절에서 33절을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찌어다 아멘.
사도바울은 본문의 말씀과 같이 기도의 신령한 도움을 청구합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게만 기도의 도움을 청구한 것만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교회들-에베소13)교회와 고린도교회14), 빌립보교회15)와 골로새교회16) 그리고 데살로니가교회17)-에게 기도의 요청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보이지 않은 제3의 힘인 기도의 능력을 익히 잘 알고 활용하였던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을 드러 기도의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기도제목의 특징은 저마다 복음과 관계된 것으로 복음을 올바로 증거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잘 먹고 잘 살라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죽고싶어서 몸부림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의 핍박과 환난의 본고장인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31절에서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요청합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목적이 행20:22-24절18)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것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였습니다(행21:8-14)19).
바울의 기도가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바울의 신령한 부탁이 얼마나 받으심직하고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까? 적어도 이러한 수준 있는 기도를 우리도 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또 기도 부탁을 하기를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기를” 구하라고 합니다. 사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어찌 보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자존심이 더 강합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치사한 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가성 있는 일로 오해할 수도 있고, 선행을 포장하는 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의 도움이 혹이라도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의 자존심이나 열등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기도의 안전장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남을 위해서 얼마나 사려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남을 도울 때 좀더 깊이 생각하고, 상대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정도에서,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는 당부를 합니다. 육신의 것과 영적인 것을 제공받음으로 서바나로 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라는 당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복의 말을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신령한 사역과 육신적인 사역을 둘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사역을 하는 사람은 육신적인 사역을 하는 사람을 육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신령한 사역자를 도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아름다운 미덕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성도들이 육신의 것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도왔던 것과 같이 또한 예루살렘 교회가 신령한 것으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도왔던 것과 같이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도울 수 있는 관계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곳에 복음의 흥왕한 역사, 왕성한 역사가, 구원의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신령한 사역자이었지만 육신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교인들로부터 육신적인 도움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도움을 통하여 재충전을 받고, 로마 교인들의 재정적인 도움을 통하여 서바나로 들어가 다른 지역과 같이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신령한 사역이 효과적으로 되어지기 위해 기도의 협력을 요청합니다. 이 도움을 통하여 바울은 마지막 전도지인 서바나까지 들어가 복음의 산 증인이 되겠다는 벅찬 소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령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을 사장시키지 마십시오, 또한 육신의 것이 있습니까? 육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마시고 신령한 것을 위해 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주변에 기록된 인물과 같이, 엘리사를 도운 수넴 여인과 같이 사도바울 주변에 있었던 훌륭한 조력자들과 같이 긍정적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살후3:10-12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2) 마8:20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3) 눅8:1-3 이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쌔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 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4)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5) 행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훝어지니라.
6) 행20: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7) 고후9:6-7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9) 갈6:8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10) 롬1:10-11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11) 고전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12) 막10:28-31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자가 없느니라.
13) 엡6:18-20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4)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15)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6) 골4:2-4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17) 데후3:1-2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18)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에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19) 13-14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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