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롬9:30-10:15 하나님의 선택3

아론33 2009. 3. 16. 15:42

 로마서21 하나님의 선택3 롬9:30-10:15. 


(롬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9: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9: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에 보면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한 부류는 이방인들이요, 다른 부류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의를 좇지 아니하였지만 믿음에 의하여 의를 얻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의의 법을 좇아갔으나 그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행위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바울이 증거합니다. 

  지난주에도 거듭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특별히 용서하시는 사랑과 인내하시는 사랑으로 인하여 구원함을 얻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그러한 구원은 인간측의 원하는 바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 의하여 되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성경에서 언제나 주장하고, 증거 하는 말씀으로서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한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초대받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인 구원의 문제에 접근하려다 보니 오히려 구원의 역사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초대는 이와 같이 절대적으로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인간편의 어떠한 의지나 행위의 노력으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바울은 재삼재사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철두철미하게 인간 편에서 선택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구원문제에 개입하려다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맙니다.  이것을 바울이 33절의 말씀으로 적절히 잘 표현하고 있으며 이 말씀은 구원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선택권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신약이나 구약에 보면 그리스도를 반석이니, 또는 산돌 등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구약을 먼저 생각해 보면 다니엘서 에서는 그리스도를 뜨인 돌(부숴뜨리는 돌)로 비유합니다1)신약에서 그리스도는 반석으로 비유되어집니다.   여기에 반석은 우리에게 신령한 양식을 공급하는 생명의 주님으로 묘사되어집니다(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33절에 나오는 반석과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은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는 거치는 것이 되지만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떠한 행위를 의지하였기에 구원의 역사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되었는가?  그 이유를 바울은 10:1-3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잘 설명합니다.


(롬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바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것임을 굳게 신념 하였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은 본래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기억하여 지켜려면 지킬수록 불가능한 것이 율법입니다2).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죄의 성품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든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었다고 바울이 주장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고집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는 자연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열심을 내지만 그 열심으로 모든 것을 얻지 못합니다.  열심이 인정되고, 그 열심이 결과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어야만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어떠한 사람이 집을 열심히 짖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집의 터를 모래 위에 놓았기 때문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자  곧 그 집은 무너짐이 심하게 되어 버립니다.  이 사람은 집을 짖는데 온갖 정렬과 열심을 쏟아 부었지만 그 열심이 인정되지 않았고, 도리어 그 열심이 낭패를 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입니다. 이 사상누각(砂上樓閣)의 교훈은 주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은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어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풍성한 소출을 열심히 걷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풍성한 대지의 소산물을 보면서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을 내어 곡식을 거두었고, 곡식이 너무 많아 쌓아둘 곳이 없어 다음과 같은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제 기존의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풍성한 가을의 소산물들을 쌓아 두어야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족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내 영혼아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흡족함을 달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런즉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말씀하시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교훈은 하나님을 섬기며 따라가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삶의 좌표를 설정하여 줍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어릭석음,  하나님께 대하여 열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열려있는 사람의 열심은 그 열심히 자신을 세우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잘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똑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의 법은 모른 체 자기의 의에 열심을 내었으나,  결과적으로 그 열심은 하나님 앞에 인정되지 않아 자기를 세우지 못하였고 결국 그 열심의 결과는 하나님의 의라는 절대기준에 다다를 수 없는 허무한 열심 이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법을 올바로 알고 열심을 내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과정에서 거부해야 될 것과 따라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선 4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얻는 과정에서 거부해야 될 것부터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10: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만이 율법의 마침, 즉 완성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율법을 페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3).   그리고 6절에 있는 말씀은 레위기18:5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서 모세는 율법을 지킴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 누가 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느냐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인생은 그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르시고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보장해 주신 유일한 주가 되십니다(롬8:3-4)4).   그러므로 6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적용될 수 없는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얻는 과정에서 거부해야 될 것은 바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는 인간 행위를 중심으로한 구원론 인본주의적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증거합니다.  즉 네 마음에 하늘에 올라가겠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 또한 음부에 내려가겠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 즉 부활과 승천이 사람의 임의로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반가이 영접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라고 반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 진리를 돈으로 은폐하고 조작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들이 그리스도를 배반한 후에 의지한 것이 바로 율법의 준행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취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배제한 구원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배제한 구원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 인간편의 노력이 배제되어진다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과정에 있어서 반듯이 수반되고 요구되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8절부터 13절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절과 15절의 말씀을 통하여서는 그 것이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전달되고 증거 되는지 알아보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롬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롬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의를 얻는 수단과 방법은 믿음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8절에 믿음의 말씀에 관하여 증거하며, 9절과 10절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얻는 방법은 입술의 고백과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합니다.  입술로 고백할 것은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세력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고 바라던 하나님의 의와 구원의 선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도 명료한 기독교의 진리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믿음의 고백과 마음의 동의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 모두에게 차별이 없다고 바울이 증거합니다.  즉 오직 믿음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나 이방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르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구원의 풍성한 은총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종교적인 노력으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어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총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믿음은 바로 들음에서 나며(17) 주님께서 주심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5).

  그렇다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는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전달되고 확산되어집니까?  14절과 15절에 기록됩니다.


(롬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믿음은 전파하는 자가 있을 때에 전달되고 확산되어집니다.   특별히 기독교는 공격적인 종교입니다.  기독교 초창기부터 복음의 전사들이 불신의 세계인 적진에 들어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였기에 기독교는 확산되고, 세계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독교 복음에 혜택을 입는 것은 우리 기독교 초창기 선배들의 피와 땀방울의 소산입니다.   주의 사도들 중 요한을 제외한 모두가 순교를 당하였고,  우리 한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최초의 순교자라고 하는 스코틀랜드 선교사 토마스는 1865년에 한문 성경책을 전해 주면서 순교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증거 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통하여 전달되어왔고, 우리의 가슴에까지 확산되었으며, 앞으로 우리의 가슴을 넘어 가정과 지역과 사회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러할 때만아 교회의 내일이 있고, 등대교회의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해서 말씀드립니다.  구원은 행위의 산물이 아닙니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어떠한 종교적인 노력을 통하여 시작되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올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법을 올바로 알고 충성하고 봉사하여 이스라엘과 같이 버림받는 열심히 되지 말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과 같이 아름답도다라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1) (단2:45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2)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4)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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