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롬9:19-29 하나님의 선택2

아론33 2009. 3. 16. 15:41

    로마서9:19-29  하나님의 선택2


(롬9: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9: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일례로 아브라함이 자기의 의지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 이루어 졌으며, 이삭의 자녀 중에 야곱과 에서의 경우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행위에 있지 아니함을 배웠습니다.  또한 하나님 선택의 내적인 원인은 하나님이 죄인에게 베푸시는 절대적인 사랑, 곧 긍휼에서 출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선택된 자녀로서 이 세상의 영광인 노벨상 이상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의 선택에 관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우리는 어떠한 사랑에 의하여 선택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즈음은 유전공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유전정보를 미리 파악하여 조작하는 방법으로 질병이 나타나기 전에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고, 건장한 자녀를 얻기 위하여 상당 부분 인간편에서 선택할 수 있는 꿈의 시대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에서는 개인의 유전 정보가 회사나 보험회사에 유출되어 개인의 신체적, 유전적 이상이 회사나 보험회사가 알게 되었을 때에 그 개인은 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퇴직되고, 또는 보험료의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여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유전 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선택의 장이 넓어짐에 따라 자신의 신체적 이상을 치료하고, 건강을 미리 돌보는 일과, 건강한 후손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전 공학이 제아무리 발전하여 인간 선택의 장이 넓어졌다고 한들 인간 편에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 영역인 하나님의 선택, 즉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은 인간편에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편에서 되어지며, 반대로 하나님 편에서 선택하지 않은 백성은 멸망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인간 편에서 이 하나님의 선택에 들기 위하여 원하고, 원한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자만을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유감스럽지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초대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신학에서는 유기라고 합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말합니다1).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이 찬양 받게 하시려는 것이요,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되어진 것이지 인간의 행위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1)(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난자들 요1:13).

  그리고 선택되어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영과 회개의 영을 내리시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어집니다(마13:11).  또한 주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는 일들이 나타납니다(요10:4-5)

  반면에 유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을 구원의 역사에서 영원히 제외시키는 것을 말합니다2). 이들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적용되어 그들의 죄를 벌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버림은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안에 숨겨져 있습니다(신29:29). 

  이로볼 때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또한 구원과 관련하여 인간은 불가불 선택과 유기의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선택과 유기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선별 기준이 인간 편에서 보면 좀 불만스럽고,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같지만 이 사실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19절로 20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그러한 오해와 불만에 대하여 단호히 맞섭니다.


  “사람아 지음 받은 피조물이 네가 어찌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말대꾸하느냐?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같으시다,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너희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대적(반문,말대꾸, 논쟁)할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맞섭니다.


  하나님은 진흙과 같은 인생에게 있어 토기장이가 되십니다3).   진흙은 토기장이의 의향대로 만들어지지, 진흙의 의향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 아닙니다.   토기장이는 어떠한 진흙은 통하여는 귀히 쓸 그릇을 만들고, 어떠한 진흙을 통하여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듭니다.    둘 다 그릇임에는 동일하고 쓰임 받는 일에도 동일하지만 그 사용 용도에 따라서 그 그릇의 자리와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기 귀히 쓰는 그릇은 선택되어진 백성에 대한 비유라 볼 수 있고, 반면에 천히 쓰는 그릇은 선택되지 못한 유기된 백성을 일컬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선별하심에 초점을 맞추어 그 절대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특성을 22절부터 29절까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선택된 백성이고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이기 때문에 선민에 대한 설명이 좀더 분명히 드러나야 하겠기에 바울은 구약의 호세아서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하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으며, 현재는 어떠한 백성인가 22절부터 23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롬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위의 말씀에서 보면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에 대한 설명이 나타납니다.  우선 진노의 그릇은 하나님이 진노를 보이시기 위함이요, 능력을 알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멸하기로 준비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고 관용을 베푸신다고 바울은 증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하나님께서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나아와 회개의 새로운 길로 나오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벧후3:9).   우리도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진노의 자식이요, 불의의 자식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었기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었습니다(벧전2:10).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사 멸하기로 준비된 백성들 가운데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것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그릇이 바로 우리라고 바울이 독자들과 지금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난 긍휼의 그릇임을 알아 하나님의 사랑에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특징이 있습니까?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인내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높여야 합니다.


   (롬9:25)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9: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구약의 선지자 중에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직업적인 창기) 고멜과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고멜은 자기의 욕정을 채우지 못하여 타인에게 가서 연애를 받아 음부가 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에 따라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고멜을 사왔습니다.  즉 고멜을 속한 것입니다.  고멜을 용서해 주고 사랑해 준 것입니다. 여기에 고멜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살지 못하였을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선민을 버리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그들에게 크신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4)

  우리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세상을 사랑함으로 영적으로 메말라있었으며, 하나님에게 단 한 번도 마음을 준적이 없는 맹랑한 사람들 이였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역시 진노의 그릇 이였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참으심으로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동정녀 마리의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와 하나 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며, 깊은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이 사랑을 찬양하고 노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특징인 있습니까?  이사야의 글을 통하여 살펴보면 그것은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롬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9: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9: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시에 북왕국은 이미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신들을 위하여 송아지 형상을 부어만들고 섬겼으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바알을 섬겼고, 자기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여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앗수르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멸망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이를 남은 자를 남겨 두셨는데, 바로 이 남은 자가 하나님의 약속을 유지해가는 주체로서 핵심적인 인물을 뜻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구원의 약속을 받아들인 자를 말하며,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망 중에 버리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큰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와 같은 대국을 이용하사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으나, 그 중에 얼마를 택하사 하나님의 신실한 구원 역사의 주역이 되게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의 우리 역시 이스라엘 과같이 타락한 세상에 동화되여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초대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의 주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요 놀라운 은혜입니까?  만일 우리의 죄를 따라 하나님께서 심판을 베푸신다면 불과 유황(세균까지 멸종)으로 멸망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황폐화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진노의 그룻에 하나님께서 일절 오래참으시고 관용하심으로 인내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을 아끼지 말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결론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로 인하여 선택할 수 있는 사양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결코 우리를 자유롭게 하거나 행복하게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선택은 견고하며,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주는 강한 은혜요, 견고한 망대와 같습니다.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선별된 백성임을 자각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마음을 맞추고 하나님의 사랑을 높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공감한다면 고멜과 같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 열심내어 음부가되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어리석어 자기를 위한 삶에 탐닉하다 멸망 받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이 되지 말고,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듣고 주님을 따라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1) (엡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2) (벧전2: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3) (렘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4) (호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호2:14)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2:15)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2: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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