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원
요11:25-26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모님의 생일이나, 가까운 은사나, 친구 또는 선후배간에 생일이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면 으레히 선물이나, 그에 준 하는 것을 금품으로 제공하여 축하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가 즐겁고, 기쁜 일이 되겠으나 말은 주는 기쁨이 더 크다고들 합니다. 아무래도 주는 기쁨이 큰 것은 주는 자의 인격이 그만큼 성숙하였거나, 아름답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믿음으로 인해 구원의 선물을 주실 때에 도 이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 듯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 안에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이 충만하신 분입니다. 그 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이라는 선물(엡2:8-10)을 주실 때 정말 너무 너무 기뻐하셨습니다(습3:17).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 영혼이 죄로부터 부활과 생명으로 돌이키는 역사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돌이킴, 즉 믿음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할 때 나타날 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는 믿음은 증거 하는 자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요1:6-7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요한은 생명의 빛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그 증거의 목적은 자기의 증거를 인하여 믿게 하려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자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증거의 사역을 감당 할 때 그의 자세는 주님 앞에 온전히 겸손함으로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이 요한의 증거가 얼마나 진실하고 겸손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도 요한과 같이 증거자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주님의 요구가 있습니다. 혹이나 이 증인된 사역을 감당할 때에 겸손하게 사역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직접적인 말씀 때문에 믿음이 발생합니다. 요4:41-42에 보면 사마리아에 있었던 많은 군중들은 사마리아 여인으로 인하여 믿게 된 경우도 있지만 그들과 예수님이 이틀을 유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고 합니다. 말씀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알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에 입각하여 성경을 생각하여 본다면 믿음은 들음으로 낳는데,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바울의 증거가 합당합니다(롬10:17). 그런데 성경을 전체적으로 관망하여 볼 때 역시 전체의 성경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요5:39,46).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성숙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한 주의 말씀으로 날마다 주 앞에 달음질하는 믿음으로 부활과 참 생명 가운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재로 믿음은 행하는 자가 있을 때 발생합니다(요14:11, 열상3:6, 열상12:25-33).
이스라엘의 열왕기 시대에 믿음의 표본이 되는 인물로서 다윗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 행하였다고 솔로몬이 기도 중에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를 위하여 큰 은혜를 베푸셨고, 은혜를 예비하사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행하므로 다윗은 우리 신앙의 모델이 됩니다. 반면에 북 이스라엘의 창시자 여로보암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악한 자의 모델이 되어 이스라엘이 넘어지고 멸망하는 이유가 바로 그의 삶을 모방하거나 따랐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열하13:2, 14:24, 17:19-23).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믿음이 또한 나타나야 하겠는데, 그것은 우리의 증거로, 또한 주의 말씀으로, 또한 우리의 행위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 생명력이 이 땅에서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세계전역에서 종교가 부활하였다고 진단합니다. 즉 종교적 자각의 확산과 원리주의 운동의 부상이 이런 현상을 낳았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종교적인 자각이 확산되는 곳이 중국 대륙입니다. 중국은 건전하지 못한 종교-파룬궁-으로 인하여 당국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자들이 진단하기를 앞으로 전도에 힘쓴 세계의 양대 종교인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가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30%와 19%로 추산하고 있지만 이 균형이 2025년에는 기독교25%와 이슬람교30%로 마호메트가 성공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세기에도 우리에게 믿음의 증거가 더더욱 요청되는 세기라고 할 것입니다. 진정한 Y2K의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것을 진단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노력했던 곳에서 세례요한과 다윗과 같이 믿음을 양산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예비하실 줄로 믿으며,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와 같이 타인이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우리도 동일한 기쁨을 선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원어설교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3:1-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자 (0) | 2009.03.16 |
---|---|
시1:1 복된 은혜 복된 삶 (0) | 2009.03.16 |
히11:8-16 믿음과 약속 (1) | 2009.03.16 |
청지기 세미나 (0) | 2009.03.16 |
창6:5-10 그러나 노아는 (0) | 200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