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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예배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비판하라

아론33 2009. 3. 16. 17:07

<논문> 열린예배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비판하라.

목 차

  서 론 

 1.문제제기       

 2.연구범위와 목적

  본 론 

  A.개혁주의적 예배의 정의와 원리 

 1.예배의 정의

1>예배의 성경적인 고찰

2>예배의 교리적인 고찰

3>예배의 일반적인 고찰

 2.예배의 원리

1>예배는 하나님 중심으로 드리는 것

2>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드리는 것

3>예배는 성령으로 드리는 것

4>예배의 신앙적, 선교적, 종말론적 특성

  B.예배구성의 기본적인 요소

 1.하나님의 말씀

 2.성찬

 3.기도

 4.헌금(봉헌)

  C.새로운 예배 형태 / 열린예배(구도자 예배)

 1.열린예배 일반

1>열린 예배의 기원

2>열린예배를 추구하는 교회들의 목적

3>열린예배를 위해 시도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4>한국교회 열린예배의 현주소

 2.열린예배의 평가와 문제점

1>열린예배에 대한 평가

2>열린예배가 초래하는 제반 문제점

  D.열린예배의 대안과 방향

  결 론


서 론  

  1.문제제기   

  현금, 한국 기독교회는 세 가지 현대주의 사상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현대 세속주의 도전이요, 둘째, 신학적 현대주의의 도전이며, 셋째, 종교적 혼합주의의 도전이다.  그 중에 현대의 세속주의는 과학 기술에 의해서 인간 사회를 합리적으로 형성하고 있으며, 현대인으로 하여금 인격적인 신으로부터 떠나게 하고 있다. 1)  열린예배는 성경적이고 교리적인 기독교의 전통에서 벗어나 과학 기술의 발전에 편승하여 세속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열린예배를 지향하는 교회들은 나름대로 교회성장을 위한 대안인 듯 저마다 성경적인 근거?를 2)가지고 타당성을 제시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따라서 신학적인 현대주의 도전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나 종교심리학의 영향3)-앞에 무방비 상태로 나가고 있다.  이들은 또한 기독교 기본 정통 교리에 충실하지 못한 상대주의 혼합주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교의적으로 교회는 예배를 위하여 일정한 지역에 있는 신자들의 모임이며4), 교회의 임무로는 예배와 건덕 그리고 증거의 세 큰 부분으로 나뉘어 생각할 수 있다.  교회의 주된 임무로서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이 하신 바에 대한 응답이요, 하나님께 향한 사람의 신앙과 순종의 행위이며, 그 초점이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5) 그러나 열린예배를 기획하는 이들은 세상 문명발전의 조류에 합류하여 영상, 록음악, 네온사인, 화려한 휘장, 연극, 세미나, 무질서한 찬양 등의 다양한 접근방법을 시도6)하지만 그 추구하는 목적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근본적으로 불신자를 중심으로 기획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교회예배의 본 기능과 임무에 부합할 수 없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미국일부 교회들에 의해 드려지는 일시적인 시대 조류라고 할 수 있는 열린예배를 마치 한국교회의 성장의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나 되는 듯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문화를 오해한 하나의 전형적인 문화사대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열린예배는 특히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드려지기 때문에 그 파급적인 여파가 한국교회 예배 환경에 급속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번 총회에서 “열린예배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비판하라”는 주제를 강도사 고시 논문으로 요구한 것은 시의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2. 연구의 범위와 목적   

  열린예배를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비판하기 위하여 우선 예배의 정의와 원리를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정리하고 그리고 예배 구성의 기본적인 요소를 서술하여 예배 성립의 요건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현대교회에 새로이 등장한 열린예배의 기원, 열린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의 목적과 열린예배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하여 열린예배의 상황을 진단하고 한국교회 열린예배의 현주소를 제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상황을 전제하면서 열린예배를 성경적이고, 칼빈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평가, 비판하여 열린예배가 개혁주의 예배의 정의와 원리에 충실한 예배인가, 그리고 예배의 합당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비판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린예배의 대안을 제시하고 열린예배가 한국적인 상황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정리하려고 한다.


  본 론


   A.개혁주의적 예배의 정의와 원리

  1.예배의 정의

 1> 예배의 성경적인 고찰 7)- 예배는 구약성경에서 아바드(ד󰔨�󰘝�)란 말로 표현되었고, 본 뜻은 ‘봉사하다’, ‘섬기다’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샤하(ה󰕘�󰚂�)로 표현되는 데, 그 뜻은 ‘굴복하다’, ‘복종하다’, ‘숭배하다’, ‘순종하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러한 구약성경의 언어사용이 신약성경에 와서 헬라어 프로스큐네오(προσκυνέω)로 표현되었고, 그 말은 ‘절하다’, ‘경배하다’, ‘엎드리다’, ‘입맞추다’, ‘굴복하다’, ‘복종하다’란 뜻으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마4:11; 요4:22-24).

 2> 예배의 교리적인 고찰 - 종교적인 예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또한 오직 그에게만 드려야 한다. 천사나, 성자들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드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아담의 타락 이후로는 중보가 없이 드릴 수가 없고, 또한 다만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다른 중보로도 드릴 수가 없다 8).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성경의 계시에 기초한 예배이다. 그러나 타 종교의 예배는 인간의 편의와 욕구 충족을 위해서 행하는 예배이다.9)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 자신이 친히 정해 주셨으므로 그 자신의 계시된 뜻 안에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는 사탄의 지시에 따라 어떤 가견적인 구상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다른 방법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10)  본래 낙원에서의 무죄한 인간의 예배는 직접적인 것(즉 중보자나 구주 없이 직접 예배 드리는 것)이 얻는데 반하여, 죄로 인하여 인간은 그러한 예배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참된 예배는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고 말씀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중보자들-천사, 마리아, 성자들과 순교자들, 그림, 형상들과 유골-에 대하여 생각하면 그 자체가 벌써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절대적인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하나님에 의하여 제정되고, 하나님에 의하여 한정되고, 하나님에 의하여 규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11)

 3>예배의  일반적인 고찰 - 예배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으로 경배하며, 공동으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2) 또 예배는 영원 자에 대한 피조자의 응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미국의 유명한 대설교가인 죤 맥카트는 말하기를 “예배는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경외와 존경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와 음악은 우리 마음속에 그를 존경하려는 바람을 낳는 자극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예배란 경배로서의 예배, 말씀 선포로서의 예배, 헌신으로서의 예배, 교제로서의 예배, 새롭게 되는 예배, 문제를 드림으로서의 예배, 생활로서의 예배를 지적하게 된다. 13)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그에게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편 기자의 말에서 보듯이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것이다(시29:2).  루터는 “만일에 그대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그대는 마땅히 그에게 예배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14)  그리고 예배 학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프랭클린 시글러는 “기독교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계시에 대한 인간들의 인격적인 신앙 안에서 정성어린 응답이다”라고 정의를 내린다.15)  예배의 기본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믿음이어야 하며, 그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예배의 대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참여가 감격 어린 응답으로 변화되고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자세여야 할 것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12:1은 바울의 말씀은 이와 같은 예배의 깊은 의미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6)


  2.예배의 원리

 1>예배는 하나님 중심으로 드리는 것 -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려야 할 분이시다. 그는 우리의 진정한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할 뿐 아니라 그의 성품과 임재하심 자체가 예배와 찬양을 드릴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17) 이와 같이 예배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찬양하고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다.  우리는 단지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하나님 같으신 분이 없다.  하나님은 높으시며, 거룩하시며, 높이 들리신 분이다.18)  그 분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며 세상의 왕이시며 만물의 주이시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대해 주셨기 대문에 하나님께 예배한다.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갖기를 희망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더욱이 죄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고 살리기 위해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고 역사 가운데서 활동하셨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실과 사랑으로 대할 것을 약속하시면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다.  이런 맥락에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인 우리들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고” 부름을 받은 것이다(벧전2:9).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교회가 주로 예배하는 공동체, 즉 성부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성자의 기이한 사역들을 선포하고 실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공동체임이 드러난다.19)  예배에 있어서 칼빈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엄위로우심을 높이는 일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림은 그의 의에 기초를 둔 것이며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예배이다. 칼빈의 예배에 있어서 강조점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의 요구에 대해서 인간 편에서의 순종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20)

 2>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드리는 것 - 예배는 그의 구속 사역 때문에 성부의 영원한 찬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교회의 예배는 성경을 통해 명백히 제시된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사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오도록 하기 위해 인간이 되셧다는 신앙과 항상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구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기독교의 주요 공리(axiom) 가운데 하나이다(요3:16; 엡2:8-10). 하향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찾아오신 것이 되고, 상향적으로 보면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의미한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의 구속 사역을 축하하는 예배에서만큼 이 같은 하향 운동과 상향 운동이 분명하게 보여지는 곳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21)  그러므로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완전한 사역이 바로 성부를 진정으로 경배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면에서 중재 역할을 하실 뿐 아니라 성부의 축복과 은혜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면에서도 중재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다(엡1:13-14; 벧전1:3). 결국 예배에서의 그리스도의 중심의 기능은 중재자(mediator)로서의 기능인 것이다.22)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하신 구원의 말씀과 언약의 성취가 예배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통하여 믿음의 회복이 이루어지며 예배자는 다시금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확인된 약속에 근거하여 세상 가운데서 무엇을 하여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삶의 희망을 간직하게 된다.23) 따라서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심부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알게 하사 성육과 십자가와 부활로 절정을 이룬, 이러한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24)

 3>예배는 성령으로 드리는 것 - 참된 예배는 성령의 활동하심으로부터 출발한다.25)  구원의 사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한, 그 구원의 사실의 재현이 결코 참된 예배의 응답을 끌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26)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 예배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가시적, 유형적 표징들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선포하고 실행에 옮기는 행위이다.  교회는 그로 말미암아 교회의 구원이 완성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행위들을 선포하고, 반복하고, 재 반복하며, 재창조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배할 때에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를 돕는 하나님의 영의 모습을 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26-27), 예배에서 성령의 본질적 기능은 우리로 하여금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데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하는 공동체인 교회는 복음의 내용을 재 상연한다.  교회는 세상과 세상 안에서의 우리의 삶에 해석의 원리와 의미를 부여해 주는 복음의 위대한 주제들을 선포하고 행위로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존재 자체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속으로 들어가는 거룩한 드라마이다.27)

 4>예배의 신앙적, 선교적, 종말론적 특성28) -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인격적 신앙의 표현인 육체적(물질적) 행위들을 통해 세상에 봉사할 준비를 갖춘다.  믿음과 순종이 없는 예배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에 우리가 완전히 전적으로 의지할 때에만 그리스도를 성부 앞에서 우리의 대표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해야 우리의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갈보리에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만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광을 위해 친히 사신 그의 몸인 교회도 성부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각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 하나님께 자신의 삶 전체를 개인적으로 드릴 것을 필연적인 결과로 요구한다. 예배는 우리의 입술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로 드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배는 세상을 향한 봉사로 표현되어져야 한다.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대상인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표징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히10:24).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이 몰고 온 사회적 부산물을 감히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피조물 전체의 질서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들도 이 같은 면을 고려해야만 한다.  끝으로, 예배는 이 세상 넘어 바라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 소망을 기대해야 한다. 특별히, 성찬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시대의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는 한 표징이다.


  B.예배구성의 기본적인 요소

 1.하나님의 말씀 - 예배의 전체적인 요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배가 말씀 중심이라고 할 때 그것은 모든 순서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가지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표현되는 것을 뜻하며, 성경봉독, 설교, 사죄의 선언과 시편들의 찬송, 신앙고백과 송영들이 이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말씀 중심 예배의 순서 가운데 직접적인 것은 성경봉독, 성직자적 선포, 그리고 예언자적 선포를 들 수 있다.  예배에서 나타나는 성직자적 선포의 순서들로는 사죄의 선언, 설교 직전 예배 참여자들에게 행하는 삼위 이름 안에 축복의 인사, 그리고 축도 등이다. 그리고 예언자적 선포란 것은 예배의 중심적 위치에 있는 그 날의 설교이다.29)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은 것과, 흠 없는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을 정성껏 듣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종교적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30)

 2.성찬(주의 만찬) - 주의 만찬은 원래 초대교회 예배의 중심적인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을 유발시키고 믿음을 강화하는 수단이라면 성찬은 주님과의 교통과 연합을 나타내는 예배의 실제적인 목표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말씀이 지적인 이해 접근의 중심이라면 성찬은 정서적이며, 신비적인 신앙의 실제이며, 동적인 것을 이끌어 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31) 칼빈 또는 칼빈주의자들의 예배의 원리는 언제나 공동체로서의 예배와 예배의식의 조화를 찾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 증거로서의 설교와 성만찬의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했다. 칼빈은 말하기를 성만찬은 우리의 신앙을 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기지만 또는 성만찬을 통해서 즉 보는 것을 통해서 큰 도움을 입는 것이 사실이다.32)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셋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기록된 말씀이 있다. 둘째는 선포되어진 말씀으로 설교가 있다. 셋째는 시각과 감각을 통해 주시는 말씀으로 성만찬이 있다.  세계의 개신교들은 설교와 성만찬의 균형을 맞추면서 예전의 복원을 서두르고 있는 현실이다. 초대교회의 예배의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그의 십자가의 속죄와 죽음을 의미하는 새 언약의 만찬을 나누는 것이었다.33)

 3.기도(행2:42) - 예배에서 기도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기도의 신학적인 본질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영광을 높이는 일에 있다. 우리는 기도라 할 때 흔히 단순한 우리의 인간적인 필요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아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인간의 간구만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를 위한 찬양과 감사로서의 영광의 찬양이 포함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예배 순서의 기도에 해당되는 것은 찬송과 기도인데 그 순서로는 아멘송, 할렐루야송, 봉헌송, 영광송, 송영들을 들 수 있으며, 목회의 기도는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34)   소요리문답 98문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고해 바치는 것을 말함인데, 곧 그의 뜻에 합당한 것들을 간구하고, 죄를 자복하며, 그의 자비를 감사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35)  구약에서는 제물을 드릴 때 제물을 드리는 예배자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예배자의 죄책을 제물에게로 옮기는 의미를 가졌다. 이는 중요한 신학적인 원칙을 보여준다. 즉 기도 없는 제사(예배)는 무용한 것이며,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기대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인의 예배에 있어서 기도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다.36)

 4.헌금(봉헌) - 예배에서의 헌금은 중요한 요소로 취급된다. 이것은 현재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의 정황을 볼 때 중요하다. 예배의 요소로서 헌금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의 신앙과 그 마음의 정성을 표현한다는데 있다.  모든 인간의 범사가 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신앙적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헌금은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에 대한 작은 표현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있어서의 헌금은 헌신의 결단, 주님에 대한 자기 헌신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본다.37)  이상에서 밝혀 본 예배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무엇보다도 그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하고 예전에 있어야 꼭 필요한 수단이다.


   C.새로운 예배 형태 / 열린예배(구도자 예배)

  1.열린예배 일반

 1>열린 예배의 기원 - 최근 한국교회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구도자 예배 혹은 열린 예배는  미국의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또는 ‘구도자에 민감한 예배(Seeker Sensitive Service)'에 대한 한국적 번역 용어이다.   그것도 최근 몇 년간 연쇄적으로 사용되고 적용되고 있는 일련의 사회적 변화-열린 음악회, 열린 교육, 열린 사회등-와 병행되는 용어이다. 38)  열린예배를 추구하는 교회들은 이사야66:19를 성경적 근거로 내세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주장을 한다.39)  구도자 예배는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담임 목사인 빌 하이벨스에 의해서 처음 구상된 것으로 알려진다. 1973년 그는 사우스 파크 교회에서 청소년을 위한 수요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었다.  당신에 그 모임은 아주 적은 그룹으로 시작되었는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금방 80여명에 이르는 그룹으로 자랐다.  하이벨스 목사는 그 그룹이 계속 자라기는 하는데 아주 적은 수의 학생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보면서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구상은 믿지 않는 자들을 찾아가는 특별한 행사로 매 주일 열기로 하고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주말의 이벤트 형태의 모임에 학생들이 반응을 보이자 그는 계속 학생들의 충고와 조언을 받으며 모인 장소의 환경을 좀 더 편하게 만들고 아울러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이 모임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던 그가 1975년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 교회에 관한 비젼을 갖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트리니티 대학에서 가르치던 길버트 빌레지키안 박사였다.  그의 사도행전 2장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는 초대교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교회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같은 해 그는 로버트 슐러 목사의 책 “당신의 교회 가능성이 있다”를 읽으면서 지역 교회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나가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새로운 교회를 출발했다.  이 때 그의 주요 목회 대상이 되는 사람들, 즉 영적인 갈급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구도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회를 세워 나아가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이다.  구도자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교회는 미국에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와 새들백교회이다.  이 두 교회는 구도자를 중심으로 한 목회철학과 전략을 가지고 발전, 성장한 대표적인 교회이다.40)  열린예배는 기독교 내에서 교회가 세상과 타협했으며, 세속적이고 사탄적인 음악을 사용했다는 집중적인 비난41)과 지금까지 시장 지향적이며, 실용주의적이고 소비자 중심적인 예배라는 질책42)을 받으면서도 기독교 예배의 한 형태로 등장하여 미국은 물론 한국에까지 상륙하여 예배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2>열린예배를 추구하는 교회들의 목적 - 구도자 예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이든 지간에 그들이 좀더 쉽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 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형식과 접근 방법을 택한 예배 스타일이다.43)  이를 위해서 구도자를 지향하고 사역하는 교회들이 디자인하면서 염두에 두는 요소들이 있는데, 먼저 그 참석자들이 성경 지식과 예배 경험이 없는 자로 간주하여 예배를 준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 가운데 기독교적인 언어는 금물이다.  예를 들면 구원, 구속, 십자가, 성화, 헌금, 설교 기도 등의 기독교적 단어를 회피하며, 이러한 단어들을 불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한다. 44)  그렇기에 구도자 예배는 기독교적인 용어를 변용 하여 쉬운 말로 사용하고 있다. 또 메시지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들어도 공감할 내용을 담고 있다.45)  그리고 기존 예배가 외식적인 면이 많아져서 축제 적인 예배의 요소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전제하에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고 예배를 통하여 생동감 넘치는 삶의 장으로 끌어올린다는 차원에서 열린예배를 도입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드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46) 열린예배를 추구하는 교회들의 또 따른 이유와 목적은 전통적인 예배의 형태로는 불신자들을 접근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문화적인 차이가 뚜렷한 불신자 그룹에게 문화적인 거부감 없이 접근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새로운 문화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겠다는 것이다.47)  열린예배는 기존 예배가 무기력해지고 그 기능을 상실했다는 진단 아래 기존 예배 갱신을 위한 대안이란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드려지고 있다.48) 

 3>열린예배를 위해 시도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 열린 예배를 추구하는 교회들은 모든 프로그램을 다양화한다.  이들은 예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문화 매체를 최대한 활용하여 재미있고 세련된 분위기를 형성한다.  공간은 가능한 한 따뜻한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조명을 사용하고 실내 데코레이션도 아늑한 공간이 되도록 설치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되도록 한다  그러므로 구도자 예배에서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예배와 연극과 영상과 설교, 간증 및 이벤트성 행사이다.  전체적인 진행은 주어진 주제에 따라 약간의 순서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음악을 통해 시작된다.  음악은 현대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밴드를 통한 연주와 함께 부르는 찬양을 섞어 약20분 정도 할애한다.  다음으로 연극이나 영상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연관된 내용을 문제 제기로 드러낸다. 이때 연극이나 영상의 내용은 현실의 삶을 극화하기도 하고 성경의 내용의 한 부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터뷰를 이용하기도 하며 영상물은 가끔 제작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여러 다양한 자료들을 편집하여 나레이션을 넣어 사용한다.49) 무대 구성도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단상 의자를 피하고 영화관과 같은 단독 의자로 텔레비전 문화에 익숙한 현대인이기에 대형 스크린 곳곳에 텔레비전을 설치하여 보기에 편하도록 동질감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목사님이나 성가대, 찬양대 가운은 평상복으로 바꿔 입는다. .  예배당이나 본당이란 이름을 강단이나 무대라는 말로 버꾸어 강단의 환경 미화도 커텐 위에 형형색색의 그림이나 조명으로 멋지게 장식한다.  또한 조명으로 분위기가 바뀌며 메시지를 위한 준비 단계로 독창이나 연극이 등장하는데, 이 내용들은 메시지 중 해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 유도적인 것들이다. 이 연극들의 내용은 불신자들의 마음을 파고들게 하기 위해 신자들은 불신자들의 생활과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해답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인도한다. 50) 구도자 예배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나 이슈는 다음과 같다 먼저 영적인 영역이다.  하나님의 사랑, 은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천국과 지옥, 하나님과의 교제, 기독교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인도, 영적성숙 및 성장, 기도들을 다룬다.  두 번째는 정서적 영역이다. 불안, 공포, 스트레스, 자존감, 분노, 자기 절제, 슬픔, 고통, 진정한 기쁨, 경쟁, 성공 등이 이에 속한다.  세 번째는 도덕적 영역이다. 여기서는 섹스(부부 성관계), 혼전 성관계, 불륜, 이혼, 삶의 기준, 알콜, 돈, 재정관리, 크리스천의 투자, 크리스천의 소비의식 등을 다룬다. 네 번째로 육체적 영역을 다룬다. 질병, 죽음, 마약, 오락, 시간관리, 건강관리, 남자란, 여자란 무엇인가, 술, 담배등을 주제로 다루어진다.  다섯 번째는 사회적 영역이다. 가정,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 자녀, 갈등, 파워게임, 지역 감정, 불우이웃,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지, 희생, 비기독교 세계에서의 그리스도인, 샤머니즘, 이단, 위기 관리, 데이트 등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이슈로서 논의되어진다. 구도자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은 담당 교역자와 드라마 연출을 겸한 운영 디렉터, 비디오 담당 디렉터 등의 전임사역자가 있다.  이 외에 파트타임, 자원봉사 등으로 봉사하는 이들이 있다.  드라마팀을 운영하기 위해 극본 , 무대장치, 분장, 연기자, 자원 봉사자를 두고 있으며, 비디오팀에는 디렉터를 중심으로 수명의 봉사자가 있다.  이 외에도 오디오팀, 음악팀, 이벤트팀이 운용되고 있으며 중보기도팀, 구도자를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팀, 또는 다양한 자원 봉사자를 관리하는 팀이 있다. 51)

 4>한국교회 열린예배의 현주소 - 열린예배는 한국에 상륙하여 기존의 예배 형식을 파격적으로 바꾸어서 현대적 문화요소를 도입하여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속속 시행되고 있다.  예배가 언제 시작되고 끝났는지도 알 수 없고, 누가 사회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예배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 교회는 나름대로 불신자들을 접촉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러 가지 예배 기법을 개발하여 한국교회의 상황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별히 한국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을 바라보면서 침체된 현실을 만회하려는 시도로서 구도자예배를 적극적으로 수용 내지 권고하는 수준에 다가서고 있다.   이미 90년대 초부터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구도자 예배를 연구하고 기획하면서 드라마 등을 적극 사용하여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한 교회들은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실시하고 있다. 구도자 예배를 통해 교회 전체에 전도에 대한 신선한 도전을 꾸준히 제공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믿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예배를 통하여 교회 내의 은사를 가진 인재들을 발굴하여 그들이 가진 기능을 통해 복음 전파 사역에 봉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계속해서 헌신하도록 이끄는 목적으로 드린다.52)  또 나름대로 열린예배에 대한 뜨거운 비젼을 가지고 열린예배의 실제적 임무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헌신을 요구하며, 분야별로 전문 사역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찬양팀도 열린예배 찬양팀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드라마팀은 공연팀장, 대본주, 연출부, 연기부, 스텝부, 기획부로 세분화 되여 전문화 양상을 띠고 있다.53)  이러한 추세는 대형 교회에서 소형 교회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예배는 매주 주말에 적극적으로 기획되어지고 젊은 20-30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열린예배에 매료된 교회들은 대개의 경우 담임사역자들의 나름대로의 새로운 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예배가 거룩성에 초점을 맞추어져 외식적인 면이 많아졌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예배의 축제적인 요소의 회복를 통하여 생동감 넘치는 장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열린예배를 시도하고 있다.54)  이와 같이 열린예배는 일부 대형교회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단계에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수용을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2.열린예배의 평가와 문제점

 1>열린예배에 대한 평가 - 열린예배에 대해서는 미국 교회에서도 긍정과 부정의 양쪽 소리들이 있다. 열린예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선교적인 노력으로서 열린예배는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열린예배는 복음전도와 교회의 수적 성장에 새로운 지론으로 평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에 있어서 열린예배는 기독교 예배가 그 독특성을 간과한 채 세속화되고 있다는 심각한 점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을 한 교회로 모이게 하려는 선교 전략과 방법은 그 자체가 비복음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한 교회로만 집중적으로 모으려는 노력은 기독교 선교라는 이름 하에 사람들을 강제로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종교 비즈니스적인 행위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전도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기독교 복음의 독특한 선포적 책임이 간과되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 때문에 구도자 예배란 ‘코미디’라는 비판이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적 생산사회가 소비자 취향에 맞추는 상품 생산과 시장전략과 다를 바 없다는 문제성을 교회가 안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나치게 유흥과 오락적인 것을 표현하는 말로서 인간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것으로 전락시킨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구도자 예배가 갖는 가장 취약한 점이다.  사람들을 교회로 모아야 하고 기독교의 세력을 확장하고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선교적인 관심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토록 저하된다는 지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열린예배의 자유스러운 예배의 형태는 오직 미국이라는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일시적이며, 실험적인 성격을 띤 예배이다.  그리고 작금의 열린예배의 형태는 스스로 말씀 중심 예배와 예전 중심의 성경적 원리를 간과하고 지나치게 전도차원의 도구로 적용시킨 예배의 변질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55)

 2>열린예배가 초래하는 제반 문제점 - 본질적으로 예배는 신앙인들이 경배하는 신앙적인 공언이기 때문에 예배는 신앙에 의하여 드려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믿음과 사랑, 그리고 인간의 모든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존귀성을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56) 그러나 열린예배는 경배와 신앙적인 요소가 상당수 결여되어 있기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본질적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개혁주의적 예배의 기본은 하나님을 주권적 하나님으로서 알고 예배해야 한다.57)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 중심의 예배는 예배로서 성립될 수 없다. 또 개혁주의 예배는 그리스도중심적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사건은 기독교 예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예배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그리스도 사건을 재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배 가운데서 창조, 타락, 성육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그리고 종말의 이야기를 반복한다.58) 그렇지만 열린예배를 지향하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십자가, 구원, 부활이란 용어를 변용 하여 사용한다. 이러한 예배갱신작업은 개혁신학이 추구한 올바른 기독교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 예배의 정체성을 세속화하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 더욱이 열린예배를 지향하는 교회들은 기존 예배의 형식을 파격적으로 바꾸어서 현대적 문화요소를 도입하여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즐기기 위한 예배는 과연 옳은 것인가의 문제이다.  칼빈이 예배의 엄숙함의 당위성을 지적했거니와, 시대와 환경이 바뀌었다 해도 열린예배는 제사로서의 예배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 낼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4장 24절의 말씀대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둘째, 보는, 보여주는 예배는 비교리화의 예배와 비교리적인 삶의 시대를 열고 있다. 예배형식의 지나친 파괴, 급진성, 프로그램 위주화는 결국 우리 -신자와 청소년, 초신자를 모두 포함하여-의 ‘하나님 이해’에 악영향을 끼친다. 즉 하나님 이해의 변질화가 초래될 수 있다.  메시지의 전달을 매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주관적인 하나님 관념이 생겨나고 가시적인(비디오, 춤, 음악, 무대장치 등) 하나님의 상상화에 치우칠 위험성이 많다.  셋째, 매체 자체에 대한 검증이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흔히 열린예배에서 예배 시작을 알리는 음악으로 사용되는 재즈음악이나 영화음악이 과연 ‘예배’에 적합한 음악인가 하는 것이다.  재즈라는 음악이 품고 있는 문화적 배경과 우리의 예배가 과연 조화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뉴에이지 음악이 만연한 영화음악을 여과 없이 예배에 사용할 위험성이 없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열린예배는 근본적으로 목적을 위한 수단이 모두 정당화 될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 대두된다.59)  또 열린예배가 청년문화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형식과 전통을 무시하는 예배가 되여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예배로 흐르기 쉬운 약점과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60) 


   D.열린예배의 대안과 방향

  한국교회의 성장을 방해하는 신앙의 병리 현상으로서 무속화, 율법화, 세속화, 형식화, 세상적 축복개념등을 지적한다.  열린예배는 이러한 병리 현상 중에 세속화의 영향을 받은 한 형태로 분리할 수 있다.  우리의 기존 예배는 실제로 세상의 불신자에 대하여 열려 있는 예배이다. 누구나 참여하도록 개방된 예배라는 것을 전제할 때 교회의 예배는 본래 열려진 예배61)이다.  열린예배가 세속화되는 길을 방지하기 위해 교회는 예배의 본질적 기능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배의 본질과 그 근본적인 근거는 우리 인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인간 밖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에게 놓여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주신 구원 계시에 근거하기 때문에 본질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그 때문에 기독교 예배는 계시 의존적 관계에 있게 되며, 그 중심이 삼위일체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62)    열린예배는 예배요소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찬, 기도-챤양과 감사, 봉헌이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열린예배는 예배의 기본적인 구성원리를 배제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예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예배요소와 올바른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 개신교는 종교 개혁자들의 정신을 쫓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를 중히 여겨 왔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잃어버렸던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의 문제를 극복한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음을 증거해 주는 것이다.63)  그러나 열린예배가 지향하는 것은 이러한 선포적인 사명을 간과64)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말씀의 중요성과 아울러 초대회에서부터 강조한 말씀의 설교와 성찬이 함께 어우러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열린에배가 예배로서  올바른 예배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불신자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예배, 그리스도의 구속을 재현하는 예배 그리고 성령으로 드려지는 개혁주의의  본질의 예배로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말씀과 성찬이 균형을 이루는 예배로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결 론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교회 기능은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가 예배이고, 다음이 전도이고 그 다음이 교육이고, 끝으로 봉사와 친교이다.65) 교회는 이러한 네 가지의 기능에 충실할 때 교회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교회의 유일성은 예배에서 찾을 수 있다. 예배는 예배 대상이신 한 하나님, 한 그리스도, 한 성령이 중심 되여 예배드려져야 한다.  그러나 전도를 위해서 기존예배의 형식을 파괴한다는 것은 교회 되기를 거부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열린예배는 한국교회 침체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예배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모집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호소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씀을 약화시키는 행위는 이방 종교에서나 찾을 수 있는 행위이다.  이방 종교에서는 설교는 다만 강화요, 교훈이요, 유익한 훈화요 때로는 유익한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시적인 미봉책에 그칠 따름이다. 그러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언이요, 생명의 말씀의 전달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 강연과 같은 열린예배의 기획은 합당한 예배로서 불려질 수 없다.  개혁주의 신앙은 성도의 영적 교제뿐만 아니라 하나의 조직체로서 사회개혁의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자연적인 면과 신령적인 면은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개혁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은 그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지라도 마땅히 강조되어야 한다.  복음 속에는 구원뿐만 아니라 사회윤리적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열린 예배를 기획하는 교회들은 이러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포기하고 있다.  오히려 세상의 영향을 받아 교회 내에 각종 세상에서 유행하는 음악과 유행을 따라서 교회 영향력을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 예배의 본질은 은혜의 계약에 기초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한 하나님과 사람, 즉 하나님과 예배자와의 교제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 하나님의 현존 임재와 축복에 대하여 믿음으로 응답하고 봉사하여야 하는 것이며 또한 인간의 응답은 예배 안에서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정보의 전달이나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건을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예배는 계시에 기초하여야 한다.  그것은 예배가 인간들의 목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서 시작되기 대문이다.  그러함에도 열린예배를 시도하는 교회들은 이러한 계시 중심이 예배형태를 포기하고, 인간의 언어가 중심이 되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개혁주의 전통을 포기하고 번영신학을 받아들인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번영식학은 신학의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지 않고 사람에게 두고 있다.  인간의 전적 타락이 무시된 채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인간의 자기 존경심이 강조는 신학이다.66)  이러한 모습들은 복음의 현대화란 미명 아래 전도를 위해 구도자 예배(열린예배)라고 부르지만 다른 복음을 양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교회성장은 지나치게 수적 성장만을 위주했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과 방법론에만 치중했다. 이러한 수적인 성장을 한 목회자는 성공한 목회자? 라는 단순한 목회성공철학이 일반화되었다. 교회성장은 시장경제적 방법 혹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공시키는 것을 따르기보다는 사도행전적인 모델을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본래 교회의 목적과 본질에 부합하는 예배의 회복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교회 성장을 위한 대안으로 열린예배는 수용될 수 없다. 또한 기존 예배의 대안으로도 열린예배가 인간의 욕구나 편의에 의해 기획되어지고, 즐기기 위한 예배로 남아 있는 한  한국교회의 예배로서 인정될 수 없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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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최정훈,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한국교회 예배연구” (목회석사학위논문, 총회목회신학원, 1989).



1). 김영한, “개혁신학 사상의 현재와 미래” [한국교회연구씨리즈 2] 서울:한국로고스연구원 p.81


2). 김만형 “구도자예배란 무엇인가”,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7년 4월 p.42


3). 이종희 “열린예배 평가 여론 확산” [기독신문] 1997년 6월 25일 p.9


4). 루이스뻘콥, [기독교 신학개론], 신복윤 역, 서울:성광문화사, 1974. p.297


5). 김길성, [교회론] 총신대신학대학원 강의안 1998, pp.22-23


6). dobson, Ed.,  [열린예배 실습보고서] 서울:박혜영, 김호영역, 홍성사 1997 p.164


7). 정일웅, [기독교예배학개론], (서울: 솔로몬 말씀사, 1993), p.23


8). Willamsom, G.I.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강해],(서울:한국개혁주의 신행협회, 1980), p.260


9). 정성구, “칼빈주의적 예배의 원리”, [신학지남]서울:충신대학출판부, 1987년 봄호 p.30


10). Willamsom, G.I., op.cit., p.260


11). Ibid. pp. 261-265


12). 이근삼 외, 칼빈주의 특성과 강조점, (엠마오, 1986), p.59


13). 정성구, op.cit., p34


14). R. 압바, [기독교 예배의 원리와 실제], 허경팽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4) p.9


15). 주승중, “하나님께서 거절하시는 헛된 예배”, [목회와 신학]서울:두란노서원,1998년 9월 pp. 76-77


16). R. 압바. op. cit., p10


17). 최병남, “예배현장의 갱신을 위한 하나님 중심예배”,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3년 2월 p.59


18). Webber, Robert E, [예배학], 김지찬역, (서울:생명의 말씀사,1988) p.13


19). Ibid., p.14


20). 정성구, op.cit., p.41


21). Webber, Robert E., op.cit., p.14


22). Ibid., p.15


23). 정일웅. “한국교회 예배유형 연구”, [목회와 신학] 서울: 두란노서원 1993년 2월 p. 57


24). R. 압바., op. cit., p.15


25). Ibid., p.16


26). Ibid., pp.16-17


27). Webber, Robert E. op. cit., pp. 16-17


28). Ibid. p.18


29). 정일웅, op.cit., p.137


30). Williamson, G.I., op. cit., p.272


31). 정일웅. op.cit.,pp.137-138


32). 정성구. op.cit., p.46


33). 이의용. “현대교회가 잃어버린 예배”, [빛과 소금] 서울:두란노 1992년 7월 pp.100-101


34). 정일웅. op.cit., pp.138-139


35). G.I. 윌리암스, [소요리문답강해], 최덕성 역,서울:성광문화사 1982, p.280


36). 성주진, “구약에서 본 예배의 원리와 요소”,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3년 2월 p.43


37). 정일웅, op.cit., pp.139-140


38). 문동학, “열린예배의 신학적 이해와 영성”, [목회와 신학], 서울: 두란노서원, 1997년 4월, p. 51.


39). Morgenthaler, Salley. [이것이 예배다 : 워십 에반젤리즘] 서울: 하늘사다리 1996, 임하나역, p.99


40). 김만형, “열린 예배로의 갱신: 그 의의와 적용”, [목회계획갱신 컨설테이션] 서울: 한국강해설교학교 전문목회연구원, 1997. PP. 353-354


41). Dobson, Ed. [열린예배 실습보고서] 박혜영, 김호영역, 서울:홍성사 1997, p.169


42). Ibid., p.92


43). 김만형, “구도자 예배란 무엇인가”, [목회와 신학] 1997년 4월, p. 43


44). 이영호 외, “구도자예배 현장을 가다”,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7년 4월 p. 88


45). 하용조, “나는 왜 구도자 예배를 시작하는가”,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7년 4월, pp. 68-69 


46). 이근수, “우리가 열린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월간목회] 서울: 월간목회사,  1998년 4월 pp.77-78


47). 손종태, “한국교회는 왜 구도자 예배가 필요한가” [목회와 신학]서울:두란노서원 1997년 4월 p.50


48). 김만형, 최재하, “하늘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예배”,[목회와 신학]서울:두란노서원 1998년 4월p.108


49). 김만형 , “전도의 꽃을 피우기 위한 구도자예배”, [목회와 신학], 1997년 4월 pp. 94-95


50). 이영호, “예수를 만나야 할 영혼을 위한 예배”, [목회와 신학] 1997년 4월 p. 89


51). 김만형, op. cit., p.96


52). Ibid., p.94


53). 권준, “복음전도의 새로운 장 구도자예배”,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7년 4월 pp.99-100


54). 이근수, op.cit., p.78


55). 정일웅, “열린예배 새로운 대안인가?”, [기독신문] 1999년 1월 20일 p.17 


56). 김득룡, [현대예배학신강], 총회신학대학 p.6


57). 최정훈,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한국교회 예배연구” (목회석사학위논문, 총회목회신학원, 1989), p.43


58). op.cit., Webber, Robert E., pp.116-117


59). 김철봉, “열린예배 무엇이 문제인가”, [월간목회]서울:월간목회사, 1997년 9월 pp. 84-86


60). 김종희, “열린예배 평가 여론 확산”, [기독신문] 1997년 6월 25일자 p.9


61). 정일웅, ‘열린예배 새로운 대안인가?“ [기독신문] 1999년 1월 27일 p.17


62). 정일웅, “예배와 신앙교육”[신학지남]서울:신학지남사  1987년 봄 p.53


63). 정일웅, “한국교회와 예배갱신”, [신학지남]서울:신학지남사, 1991년 봄호, p.179


64). 신성종, “미국교회의 열린예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월간목회사] 97년 9월 p.91


65). 김득룡, “예배와 목회” [신학지남] 서울:신학지남사, 1987년 봄호 p.6


66). 김의환, “한국교회의 성장 둔화와 번영신학” [신학지남] 서울:신학지남사 1998년 가을호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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