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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결혼관

아론33 2009. 3. 16. 17:17

성경적인 결혼관


    오늘날 가정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쉽게 이혼하고 재혼을 거론함으로써 결혼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 지향해야 할 모습이 왜곡되고 모독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혼과 가정의 붕고히가 지극히 일상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까지 하지만 결혼과 가정의 붕괴는 사실상 쓰디쓴 댓가를 지불하는 현상들을 낳고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루는 결혼이라는 관계는 가정을 구성하는 기초적 관계이며, 이 관계가 결국 국가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결혼관의 올바른 이해는 결혼을 앞둔 성년기에 있어서 정립해야될 가치관입니다.


                   결혼의 성경적 근거


    1) 구약에서의 결혼의 의미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e Dei)을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1장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가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2장에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창2:18)라는 이유에서 후에 여자를 창조하시고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요,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이와 같이 결혼 제도는 인간 역사의 우연한 산물이 아닙니다. 결혼제도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어느 시점까지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전기간 동안 유효하도록 제정하신 신적인 제도(Divine Institution)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모든 동물을 창조하셨으나, 여전히 아담이 부족한 상태임을 보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깊은 잠을 자게 하신 후에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를 만들어 그의 삶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교제하도록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심에 있어서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정신적, 영적으로 남자와 일치하며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창2: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그를 위하여”는 “남자처럼”이라는 말로 정의되는데, 여기 남자처럼은 문자적으로 ‘그와 일치하게’ 혹은 ‘그의 배우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돕는다는 말에 있어서 ‘도움’이라는 말이 여자가 남자의 보조자라는 의미이나, 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르칠 때만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미루어 여자의 위치가 남자의 보조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즉 ‘도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시20:2, 121:1-2, 124:8), 실제로 하나님 자신이 ‘도움’이십니다.  (출18:4, 신33:7, 시33:20, 70:5, 115:9, 146:15) 그러므로 ‘도움’이라는 말은 저열한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용어를 여자에 대해서도 적용했다는 의미로, 인간은 대등한 관계에서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배필을 필요로 하므로 영자는 이런 의미에서 남자의 배필이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창세기 2:24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함으로써 결혼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여자를 창조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속해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며, 이 두 생명은 결혼 관계를 맺어 각자의 완전한 생을 이룩하기 위하여 한 몸을 형성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2) 신약에서의 결혼의 의미 - 신약에서의 결혼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부인 교회의 순종을 통하여 묘사된 결혼을 설명하고 있는데, 바울은 이러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엡5:21-33,

    그러므로 신약에서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결혼의 관계는 아래의 도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가 머리이시며, 아내와 남편은 동등한 반려자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각 그리스도께 종속되고 지배된다면 어느 쪽도 다른 한쪽을 지배할 수 없으며,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결혼관계는 법적 계약이나, 사회계약에 매여 있는 것 이전에, 기독교인들은 결혼은 하나님과 기독교 가족들 앞에서 맺은 언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언약은 둘이 하나가 되며,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서로 보충해 가면서 하나님의 선교와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상호 협조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은 바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살아있는 동안 영구히 유지되어야 할 하나님의 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제도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날  결혼의 붕괴는 바로 결혼의 기원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인간의 제도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결혼의 사회적 의미


    - 사랑하는 두 남녀는 약혼기를 거쳐 마침내 꿈에 그리던 부부관계를 맺는 결혼에 도달합니다.  결혼은 두 남녀 사이에 합의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계약이지만 충분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며, 동시에 법적인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즉 결혼한다는 것은 두 남녀가 그냥 즐거워서 또는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지닙니다.  부언하면, 사회나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결혼은 비밀로 성행위를 하는 것이지 결혼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은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남녀의 결합으로 양가의 가정, 사회, 국가에 공포함으로서 인정받아야 되는 사회적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즉 결혼의식을 통하여 가족 및 친지, 이웃에게 부부가 된다는 선서와 공고를 요구하며, 또한 법적인 승인으로서 사회적으로 다음의 3가지 기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째, 성적인 통제의 기능입니다.  즉 결혼한 남녀는 다른 이성과의 교섭은 불가능하며, 다른 애인을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이는 사회의 질서를 위한 것입니다.

    둘째, 종족계승을 목적으로 하는 증식의 기능이 있습니다.  즉 개인의 영원한 분신을 남기기 위해서, 혹은 가족의 대를 잇기 위해서 결혼한 부부는 새 생명을 출생시켜 사회의 성원을 충원시키는 역할을 부여합니다.

    셋째, 사회 결합의 확장을 하는 사회적 공인의 기능을 갖는다. 즉 결혼이란 단지 남녀의 부부관계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양쪽의 친척이 직접 관계되며. 이것이 확대되어 다른 가족집단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결혼의 동기


    결혼이란 우리의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우리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며 부모, 자식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결혼을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결혼을 하도록 사회로부터 자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들이 결혼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창2: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 For this reason a man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and they will become one flesh"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함입니다. - 결혼생활에서는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사회가 기대하는 성적 역할을 수행 가능하게 하여 주어 마음의 평화와 안정감을 덧붙여주어야 합니다.


    경제적인 안정유지를 위해서 입니다. - 결혼을 함으로써 남편은 경제적 부양을 마련하고 아내는 가사를 돌봄으로써 어느 정도 물질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안정은 우리 나라에서 남자에 비해 여자 쪽에서 더 강한 결혼동기가 될 것입니다.


    정서적 안정유지를 위해서 입니다. - 결혼은 개인에게 정서적, 감정적 안정을 부여해줍니다.  결혼을 함으로써 생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이해해주고, 감정적 뒷받침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은 다른 사람과 더 친밀한 일대일의 관계를 유지시켜 자신의 정서적 욕구충족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녀출산의 기회, 독립된 신분을 인정받기 위해서입니다.

                   결혼의 적령기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결혼적령기를 20대 전후반기로 삼아, 이시기에 결혼을 하면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사회에서 정한 것으로, 만일 이러한 기준을 무시하고 결혼한다면 여러 사람의 주목이나 화제 거리가 되어버립니다.  예를 들면 40대의 남자나 여자가 20대 연하의 배우자와 결혼한다면 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어 화제의 인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또 우리 나라에서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호적상 결혼연령도 남자 18세 이상, 여자 16세 이상으로 되어 있으며, 남자가 여자보다 3-4세가 더 많아야 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보다 반드시 연상이어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연령기준은 개인,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장 이상적인 결혼의 적령기는 언제일까?  이것은 호적상의 연령뿐 아니라 생리적, 사회적, 정서적, 지능적 연령들과의 조화가 얼마나 균형 잡힌 성숙을 이루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대체로 정상인에 있어서, 신체적 성숙은 14세부터 16세 사이에 남녀 모두 성적으로 성숙하게 되나, 신체적 모든 기능은 20대에 이르러 원숙됩니다.  이 시기에는 비교적 신체적 성숙을 한 시기이고 아직 태도와 습관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시기이므로 결혼생활에 쉽게 적응합니다.  그러면 정서적으로 성숙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까?


    지능의 성숙 - 자신의 연령에 알맞은 지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지능을 일상생활에서 성숙된 사람답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상황을 판단하는데 개인의 상상이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정당하게 이성과 교제하며 결혼의 준비를 착실하게 해야 합니다.

    사회 중심성 -사회의 조직 속에서 인간관계와 생의 올바른 이념을 바로 알고 사회의 권위와 전통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는데 필요한 기본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자기자신의 수용 -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똑바로 알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합니다.  또 자기의 실수에 대하여 남을 탓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 생활에 유용한 방향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 - 현실을 도피하거나 지나치게 과장되게 생각하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갖지 않고 항상 현실로부터 출발하고 미래를 향해 진출하는 건전한 생활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실패에 정착하지 않고 현실 가능한 방법으로 접근 노력하려는 용기도 갖추어야할 것입니다.

    독립성 여부 - 성숙한 사람은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해야 합니다. 즉 자기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을 갖추고,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독립성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부모에 대한 의타심은 어릴 때 양육태도에 의존하는데, 성숙되지 못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부모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정서적 안정성 - 성숙된 사람은 남의 아첨, 칭찬, 비난 등에 동요되지 않습니다.  즉 감정적으로 충분히 발달되어, 남의 평가에 대하여 자기를 동요시키지 않고 가볍게 받아 넘길 줄 알아야 합니다.

    자제력 여부, 성과 결혼에 관한 긍정적인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상에서 열거된 성숙의 조건을 다 갖추고 결혼을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이상의 조건들은 연령과 더불어 결혼의 적령기를 서술하는데 필요조건이 됩니다.  부언하면, 성숙된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되면 서로의 문제를 감싸주고, 또한 현실에 맞추어 긍정적으로 해결하려는 능력을 갖추어 서로의 관계를 유연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연령이 많아도 정서적으로 성숙되지 못하면 감정적으로 불안정하여 결혼생활에 불만이 쌓일 수 있으므로 결혼생활에 분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의 적령기를 말할 때는 연령과 더불어 사회적 성숙을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배우자의 선택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할까?  고후6:14-15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크리스챤들은 믿는 자들을 반드시 선택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찾아갈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하고 바랐던 것처럼, 믿는 자라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때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내가 왜 결혼을 해야 하며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혼전 임신으로 인해,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혼자 살게 될 것이 두려워서, 어떤 불행한 독신자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강박관념에 의해 결혼하려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크리스천은 성경의 원리를 따라야 하며,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만드셨기 때문에 결혼의 참 의미를 깨달아 믿는 자 안에서 배우자를 선택해야 한다.

    성도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두어야 할 기준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인가? 이 사람의 삶에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 있다는 증거가 있는가? 갈5:22-23. 이 사람과 나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는가?  교회, 기본적인 삶의 표준, 옳고 그름에 대한 견해, 기독교 가정 전반에 걸쳐 의견이 일치하는가?  서로의 비전과 삶의 태도가 일치하는가?  위와 같은 문제들을 살펴본 뒤. 기타 일반적인 조건들을 제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때에 기억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을 만날 때 그 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하심과, 또 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일이며,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이다.

    성숙한 성도라면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할 것이며,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과 상대방의 문제점을 볼 수 있는 태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며 역사적이고도 장래 적인 계획을 세워하는 모습들이 나타날 것이다.  서로가 이런 부분들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영적인 문제들을 깊이 나누어 결혼 전 배우자 선택에 철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결혼에서 성의 역할


    성이 결혼에 있어서 최고로 중요한 면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결혼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남녀’관계는 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부 연소엔진에 가솔린이 필요하듯이 행복한 결혼에 성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성은 결혼에 힘과 추진력을 주는 최상의 연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성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네 가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역할 - 부드럽고 신중한 성관계를 통한 한 육체와 다른 육체와의 결합은 두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의 가장 큰 표현입니다.  성과 인간의 육체,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강한 정열은 나쁜 것도, 우리 자신의 창조물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과 우리가 받은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하나님께 표현함으로써 다른 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셋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라고 쓴 사도 바울의 표현은 부부간의 사랑을 제외한 것이 아닙니다.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 - 사랑의 행위에 수반되는 긴장을 푸는 것은 하나의 깊은 휴식이며, 우리에게 자신감과 만족감을 지탱케 해주는 무의식의 세계로 몰입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온 세상의 긴장이 엷은 공기 속으로 용해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의 적절한 역할은 남편과 아내로 하여금 육체적, 정신적으로 깊은 휴식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성행위는 혼자가 아니라는 상호간의 재확인이며, 소유하며, 소유 당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성관계 없이 결혼은 실패합니다.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 - 사랑은 성 오르가즘, 성적 쾌감의 절정에서 실현됩니다. 사랑은 주는 것과 받은 것의 절정이며, 승리와 행복의 완성입니다.

    아이를 갖게 해 주는 역할 - 올바르게 임신돼 아기는 함께 나눈 사랑의 축복입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깊게 서로 사랑할 때 이 사랑의 나눔은 그들의 결합인 어린아이 출산으로 실현됩니다.  어린아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내미는 가장 위대한 것이며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내미는 가장 위대한 것으로 불이어 왔습니다.  이는 남녀 사이에 함께 나눈 사랑일 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나눈 사랑이기도 합니다.  임신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보다 훨씬 큰 힘이며 가볍게 다뤄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그리고 희망적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시127:3-5.


                   혼전 성관계에 관하여


    많은 조사에서 혼외정사나 동성애 등은 여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혼전 성 태도에 대하여 무엇이 옮고 그른지에 대한 견해가 일치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상이한 견해로 인하여 전보다 더욱 개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성행위를 포함한 생활의 모든 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큰 자유와 권력을 누려왔습니다.  그러므로 혼전 순결이 특히 여성에게 요구되어 순결을 잃은 처녀의 가치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는 신부의 처녀성을 강조하여, 구약성경에 의하면 순결을 잃은 신부는 죽이라고까지 하였다.

    누구나 성태도나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기 마련인데 이러한 기준은 개인의 일생을 통하여 변화합니다. 대체로 결혼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을 부모로부터 받으면서, 처음에는 보다 보수적인 기준을 지니나 결혼 전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거나 부모의 가정을 떠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등,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모든 개인은 다음의 4가지 성도덕 기준중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가. 절대금지(Abstinence) - 혼전 성행위는 어떠한 상황에서건, 남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하며, 따라서 혼전 순결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나. 애정이 있는 한 허용( Permissiveness with affection ) - 상호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감과 애정이 있는 한 혼전 성행위는 남녀 모두에게 정당한 일이며 따라서 도덕성 여부는 혼전 성행위 자체보다는 그에 따른 책임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다. 애정에 관계없이 허용 ( Permissiveness without affection ) - 상호 애정을 느끼는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육체적 매력이 있는 한, 혼전 성행위는 남녀 모두에게 정당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에 대한 극히 개방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1950년대에 만연했던 비트족, 또는 1960년대의 히피족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 이중기준 ( Double standard ) - 혼전 성행위는 남성에게는 허용되나 여성에게는 허용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의 결혼 여성은 순결해야 한다는 것.


    앞에서 설명한 기준 중 서구사회에서도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늘 순결이 규범으로 주장되고, 문화적으로 인정된 기준이었으나, (가)에 대한 기준이 대부분의 경우 결혼 전 어느 시기에 나. 로 변화하는 경향을 보이며, 강한 종교적 신념이나 엄격한 부모의 영향을 받는 개인은 여전히 가. 고수한다. 

    그러나 결혼 전 남녀의 신체적 접촉은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없을 수는 없는 것이며, 일단 접촉이 있게되면 다시 처음의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여, 신체적 접촉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신체적 접촉이 반복됨에 따라, 그 행복감이나 자극의 효과는 반비례로 감소하기 마련이며, 그렇게도 되고 보면 접촉의 방법이나 자극의 종류 혹은 강도등 어느 것이라도 강화시켜 그 결과는 점차 위험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적절한 통제를 못하거나 쾌락만을 추구하게 되면, 혼전 성행위로 인해 일생을 불행하게 지내야 하는 예가 발생하며, 이점이 이성교제에 수반되는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혼전 성경험에 따른 문제


    순결이란 강요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식에서 우러나야 하며, 누구를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지켜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성윤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전의 순결이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만 강조하다보면, 타의에 의해서, 혹은 실수에 의해서 순결을 잃었을 경우 항상 죄책감에 빠지거나 자포자기하기 쉽습니다.  순결을 잃었을 경우 또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육체보다는 인격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인격적 성숙을 도모하여 그 손실을 보상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만일에 혼전 성행위에 관하여 직, 간접으로 알게되면 파혼율이 높아진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연구결과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이성교제에 임하는 당사자나 주위 사람들 모두가 명랑한 교제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요구됩니다.  대개의 경우 여자보다는 남자의 성적인 충동이 더 강한 것이 보통이며, 일단 남자들의 성적인 충동이 일어나고 보면, 그때는 도덕적 종교적 고려는 당분간 중단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상을 믿으려 하기보다는  그런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사전에 조정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를 조정할 수 있을까?

    1. 성실하고 상냥한 태도로 ‘아니’라고 솔직히 말하라.

    2. 재미있는 대화를 계속 이어지게 하라.

    3. 성적 흥미를 조장시킬만한 환경이나 기회를 피하라.

    4. 데이트에서 할 일을 세밀하게 미리 계획하라.

    5. 두 쌍으로나 그룹으로 만나는 데이트를 가지라.

    6. 처음부터 남자 파트너에게 자기의 성에 대한 태도를 밝혀 두도록 하라.

    7. 밤에 너무 늦게 귀가하지 말라.

    8. 데이트 후에 할 일들을 계획해 두라.

    9. 이성적으로 당신의 견해를 상대방과 의논하라. 두 사람이 왜 그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피차         분석해 보는 태도도 좋다.  분석한다는 자체가 지성인답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될 때에는 흥분을 식힐 수 있다.

    10. 애무행위를 촉진시키는 행동을 하지 말라.

    11. 당신이 도달해서는 아니 될 기준 점을 정해 두라.

    12. 상대방의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딴 데로 바꾸게 하라.

    13. 당신의 파트너에게 집에 데려다 주도록 부탁하라.

    14. 애무에만 흥미를 가지는 남자와는 데이트를 하지 말라.


    이상은 200명의 미국 여대생들이 혼전 성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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