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8:15-17 /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 모르드개
에스더서는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성한 이후 약 33년의 시간을 경과한 때로서 다리오 왕의 아들인 아하수에로( 힘센 눈, 힘센 사람 / 크세르크스) 왕이 통치하던 시대로서 주전483년 이후 10년까지의 시대적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은 매우 변덕이 심하고 잔인한 독재자로 군사적 행동들을 통하여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헬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는 여색에 빠져 살다가 주전 464년에 자신의 침실에 침입한 암살자에 의하여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본서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궁에 직위한 지 3년에 모든 귀족과 관료들을 모아 놓고 180일 동안 잔치를 끝내고, 또 다시 수산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베풉니다. 이때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 왕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뭇 백성들에게 보이게 하려 했으나 와스디가 응하지 않습니다. 이에 격분한 왕은 와스디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유다인(베냐민지파) 모르드개가 양육한 조카 에스더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모르드개가 바사국의 행정관직에 있을 때에 빅단과 데레스라 하는 사람들이 원한을 품고 왕을 암살하려다가 모르드개의 신고로 그들이 처형되었으나 그 공로는 한 동안 묻혀져 버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왕궁에는 왕의 총애를 입고 있었던 아말렉 사람 하만이 권력의 중심부 급부상하고 있었는데, 아말렉 사람들과 유다인들 간에는 영적으로 적대적인 감정이 있었던 고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깊은 감정적인 골이 있었던 터라, 사사건건 모르드개와 하만은 대립하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민족적, 신앙적인 자존심으로 인하여 하만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만이 이러한 모르드개의 모습을 보고 격분하여 그만 죽이는 것이 성미에 차지 않아 그의 민족 전체를 죽이려는 엄청난 음모(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하려는)를 꾸밉니다. 이 음모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드리겠다는 선심을 베풀고 왕의 반지를 얻어서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유다인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체를 도륙하라는 명령서에 어인을 찍어 전달합니다. 이 소식이 전달되자 유다인들은 하나같이 모르드개로부터 시작하여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워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에스더에게까지 전달됩니다. 본래 왕실의 법은 왕이 부르지 아니한 상태에서 왕실에 나가면 죽임을 당하는 현실적인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더가 금식함으로 기도한 이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적인 용단을 가지고 왕의 어전에 나아가자 왕 앞에서 총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왕이 에스더에게 묻기를 “너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에스더가 하만이 만들어 놓은 계략에서 자기 생명과 민족을 살려달라는 간청을 올리면서 일의 자초지종을 왕에게 알리자 “이 악한 하만”이 권력에서 제거되고, 왕실의 진정한 공로가 밖으로 드러나면서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만들었던 나무에 하만이 달려 죽게 됩니다. 그리고 하만이 죽임을 당하자 하만이 계획하였던 방법대로 모르드개가 왕의 서기관을 소집하고서는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려 보냅니다. “유다인은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에 하루 동안에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고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 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지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라는 것” 이였습니다. 그 조서를 각 지방에 전달하고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모르드개가 모든 권위를 가지고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의 자리를 차지한 이후 12월 13일에 하만의 자녀 열명과 그에게 속한 500명의 사람들이 수산성에서 죽이고, 그 다음날에 삼백 명을 추가로 죽이고, 각 지방에서는 유다인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함으로 결국 모르드개을 중심으로 한 유다인들의 승리로 이 글이 기록 되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이 민족적인 기념일이 되어 14일과 15일을 기념하게 하였으므로 부림 절이라고 부릅니다. 부림이란 부르의 복수형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 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는 것이 본서의 기록된 내용입니다.
에스더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러나 한 결 같이 주석가들은 모르드개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예표론적인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렇게 주석을 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예표론이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고 모르드개의 삶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론적인 사역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알아보고 모르드개를 통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합니다.
예표론이란 헬라어 : tuvpo"[튀포스]에서 온 말로서 영어로는 typology라고 합니다. 그 뜻은 맞은 자국, 인쇄자국, 양식, 식양, 또는 본보기, 예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원형의 그림자 내지는 투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 본문을 우리가 찾아보면 이해가 빠를 듯 합니다. 히8:5의 말씀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히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tuvpo" )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이를 유형론 또는 모형론이라고도 하는데 유형(類型)이란, 성질이나 특징 따위가 공통적인 것끼리 묶은 하나의 틀. 또는 그 틀에 속하는 것이라는 뜻이요, 모형(模型)이란 같은 형상의 물건을 만들기 위한 틀. 실물을 본떠서 만든 물건. 작품을 만들기 전에 미리 만든 본보기나, 만든 작품을 줄여서 만든 본보기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원형과 모형 또는 유형 사이에는 공통성이 존재하게 되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시간적으로 상호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표된 것이 먼저 나타나 그림자와 같이 드리우고 원형은 차후에 반드시 나타남으로 예표된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실체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표된 것은 원형을 반영하기 때문에 유형적, 모형적인 면에서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르드개의 사역 속에 분명 그리스도의 사역이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데 이 시간 원형 되신 그리스도와 그 모형이 된 모르드개의 사역 속에서 이러한 공통점들을 몇 가지 찾아봄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경해석에 일관된 발걸음을 오늘 한 걸음 더 내딛기를 원합니다.
모르드개의 사역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적인 모형들
모르드개는 악한 자 앞에 굴하거나 타협하지 아니하는 의연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선택함을 받은 백성으로서 느브갓네살 왕 때에 비록 포로로 잡혀 왔지만, 수산궁에서 정부의 중요한 관리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2:19), 자기의 사역에 충실하였던 사람입니다(2:21-23). 그러한 그에게 영적인 대적자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하만이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인물이라면 하만은 또한 적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구도가 가능한 것은 바로 하만에 대한 에스더서의 표현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만은 혈통적으로 보면 아말렉 사람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에 중무장을 하고 그들을 공격한 악한 세력들이였습니다(출17:8-16). 그러하기에 주님께서 멸하기로 하신 불공대천(不共戴天 한 하늘에서 더불어 살 수 없을 정도로 큰 원한을 가짐. 또는 그러한 원수).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讎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히게 한 원수)였습니다(출17:14-16 /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그러하기에 주님께서는 그러한 일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 백성들을 멸망시킬 것을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신25:17-19)하셨을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4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사울 왕에게 하달된 첫 사명이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시라는 말씀 이였습니다(삼상15:1-3). 그러나 사울이 이 명령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임의대로 입맛대로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 하나님에게 비참하게 버림받는 왕이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는 모르드개와 하만과의 관계를 보아야 모르드개의 태도와 하만의 적대적인 감정의 골이 어느 정도 인가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며, 이들의 대립은 개인적인 대립을 뛰어넘는 다는 것을 십분(十分 넉넉히. 충분히. 아무 부족함이 없이)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에3:1-6).
이러한 역사적이고, 영적인 관계를 알지 못하고서 인간적인 상식과 인권적 차원에서 에스더를 본다면 여기에서 실족하기 쉽습니다. 실질적으로 어떤 비구니가 에스더를 읽다가 하나님은 사랑도 없으시고, 공평하지도 않으시고, 자비도 없다는 자기 결단을 내리고 기독교를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에스더서에 나타난 유다인과 아말렉 간의 양보할 수 없는 영적 대립을 통하여 나타난 모르드개의 승리를 통하여 믿음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어떠한 과정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만을 영적으로 보면 적그리스도입니다. 에7:6 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7:6 에스더가 이르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hZ<h' [r;h; @m;h;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
여기에 악한 하만이란 뜻은 히브리어 자음을 숫자로 표기하면 666의 숫자로 환산이 됩니다. 이는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계13:18 /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따라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한다는 것은 바로 마귀 곧 사단에게 경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절대로 모르드개의 신앙적인 양심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사단의 대립을 예표론적인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다음에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4:5-8 /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모든 권위와 영광을 가지고 예수님께 자기에게 절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를 섬겨야 된다는 말씀으로 그 시험을 이기어 내십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하만이 자기의 압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모르드개에게 그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상의 법으로 보면 적법한 절차(3:2 왕의 명령)를 통하여 요구하는 것입니다(에3:1-6).
그러나 모르드개는 믿음에 굳게 선 인물이요, 영적인 자존감이 높은 자이였기에 영적인 싸움에서 단 한발자국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만은 하나님의 원수요, 이스라엘의 원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악한 하만이 사이코패스( Psychopathy 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중의 하나이다. 원인은 뇌의 전두엽의 이상이 오는것 때문으로 알려져있으며 이 증상을 앓고있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적인 하만이 가만히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는 발끈하여 그 즉시 자기의 직위를 이용하여 그간 쌓아온 엄청난 비자금, 바사왕국의 년간 총수입의 2/3에 해당하는 은 일만달란트 대략 375톤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동원하여 왕으로부터 유다인을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하려는 계획에 왕의 어인을 찍게 함으로 공식적인 절차에 들어갑니다. 그 절차를 시행할 날짜를 얻기 위해 1월에 부르 곧 제비를 뽑아서 12월13일에 대학살(holocaust 유대교의 전번제(全燔祭 / 짐승을 통째 구워 신 앞에 바침 / 사람·동물을 전부 태워 죽임; 대학살; 대파괴, 파국, 큰불; (the H- 나치스의 유대인 대학살)을 계획합니다. 여기에서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간다(잠13:22, 삼하16:23 아히도벨의 모략 14, 23,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지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세 장사되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때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원히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모든 유다인들과 더불어 대성통곡하면서 금식기도 합니다(에4:1-3). 여기에서 우리가 가져야 될 기도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함께 하여 주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렇게 주님이 주장하여 주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 약속이 실현되는 장을 열기 위해서 주님 앞에서 대성통곡하면서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함으로 주님의 약속이 진실이라는 것을 위기에 처한 자신은 물론 민족 앞에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될 자세요. 기도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모르드개가 그렇게 기도하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늪에 빠진 몸이 나아올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만의 계략은 더더욱 구체화되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만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인 모르드개을 먼저 죽이기 위해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과 상의한 후 높이 약25M가 되는 나무를 준비하여 왕에게 죽이기를 청구하려고 나아갑니다(6: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 집중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러한 모르드개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를 예표한 기도의 사역을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그 형틀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러하시기에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눅22:42-44). 그리고 그 기도를 히브리서5:7-10의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히5:7-10 /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형틀을 바라보시면서 심한 통곡으로 우셨다고 기록 되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성을 입으시고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이 일들이 당신을 통해서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다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의 눈물로 간구하셨고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로 원수들의 무장을 온전하게 해제시키셨습니다(골2:13-15 /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리고 그러한 사역을 통하여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히5:9).
사실 주님이 당하신 슬픔은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 무심하다 못해, 무관심한 지경에 떨어져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삶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는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자기와 민족을 향해서 구원하실 것이란 사실에 대하여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이러한 기도가 하만의 계략으로부터 벗어나는 기도가 되었고, 구원의 기초가 되어 진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간곡하게 부르짖는 것입니다(요일5:14-15 /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우리들도 주님과 같이 모르드개와 같이 기도할 때에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심한 눈물로 간구의 소원을 주님께 드린 결과 주님은 그에게 살길을 열어 놓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하만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도록 이미 에스더를 왕후로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초가로서 어려서부터 양육한 아름다운 여인이였습니다. 에스더는 왕의 총애를 얻으면서 폐위된 와스디을 이어 왕후의 자리에 세워졌고, 그가 바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왕 앞에 나아가 왕의 마음을 얻어서 하만의 계략이 무력화되도록 한 인물이며, 모르드개의 기도가 현실화 되도록 도운 인물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향한 자비와 사랑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후4:8-10 /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요일5:18-19 /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이와 같이 모르드개가 영적인 자존심을 지키고, 악한 자 하만에게 엎드리지 않음으로 죽음의 사지에 내몰리고, 자기 때문에 민족이 멸절되는 절체절명의 과정에서도 그 믿음을 굳건히 지킨 결과 에스더가 하만의 무모한 모략이 얼마나 허무하고, 어리석었으며, 근거 없는 비방이었는지 왕 앞에 들어냅니다(7:3-7). 이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가 과거에 배반자 왕의 내시들 빅단과 데레스의 반역으로부터 왕실을 지켜준 공로가 역대 일기를 통해 드러나고 인정되면서부터 하만이 코너에 몰리기 시작합니다(6:1-3, 9 / 잠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을 죽이기 위해 만든 형틀에 자기가 달리어 죽게 되는 비참한 패배를 당함으로 권력에서 영원히 추방되었고, 자기의 열 자녀들과 이스라엘의 대적들 역시 본래 자기들이 계획한 12월 13일에 죽임을 당하였고, 다음날에도 유대인의 대적들이 온전하게 제거되어 집니다(9:16 칠만 오천 명이 도륙됨). 그리하여 하만은 돈 잃고, 생명 잃고, 자녀들 목메어 달려 죽고, 자기에게 속한 영적인 사람들 모두를 비참하게 죽게 만드는 비극의 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만의 형틀은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형틀을 예표합니다. 사실 주님이 온 인류의 저주를 받은바 되사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그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 이였기에 죽음이 예수님을 잡아둘 수 없었습니다(행2:23-24 /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만이 계획한 형틀은 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한 형틀 이였으나 그 형틀에 하만이 달려 죽음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는 승리의 기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패배자의 상징 이였지만 십자가 역시 믿는 자들의 승리의 기점이 되고 만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날을 기념하여 12월14일과 15일을 부림절이라 하여 오늘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념하고 있으며 이 날에 하만의 귀와 입을 과자로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말렉 사람 하만과의 대립에서 승리한 이후에 우리가 읽은 본문에 모르드개는 온전히 승리자의 모습으로 금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는 모습은 바로 다니엘이 본 환상 그대로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단7:9-12).
모드드개의 기도가 적그리스도로 상징되는 하만의 세력을 무너뜨린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앞에서 짐승의 수로 상징되는 적그리스도도 역시 영원토록 그 권세를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중앙에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고 말 것입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왕으로 임하시면 우리에게 있는 슬픔과 멸시와 천대가 변하여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동시에 존귀함이 있게 될 것이며, 어린양과 더불어 천국잔치를 성대하게 열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을 가지고 영적인 자존감을 지키어 나갑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보증하신 약속이 있다하여도 그 약속을 부여잡고 기도하여 기도의 잠을 일깨웁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일에 우리들도 마귀를 대적하여 그 세력을 분쇄하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영역에 회색지대가 없고, 중간지대나 타협의 여지는 없습니다. 타협은 곧 종속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하만의 압박과 협박을 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맛서 믿음의 산 증인이 되어 영원토록 승리하신 예수님을 미리 보여 준 것과 같이 된 것과 같이 오늘 우리도 믿음의 산 증인이 되어 다신 오실 왕 된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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