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NKJV]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you and the woman, And between your seed and her Seed; He shall bruise your head, And you shall bruise His heel."
[KJV]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it shall bruise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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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후손과 아담
아담은 인류의 시조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는 중 여섯째 날에 아담과 하와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1).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그 어떠한 피조물보다도 우월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존귀한 자가 된 것입니다. 또 그들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종류대로(/nymil] 1:11,12,21,24,24,25,25) 지으신 식물계와 동물계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권한을 부여하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더욱이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설하신 물 많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신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의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되 한 가지 계명만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것과 만일 그것을 먹었을 경우에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2)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생기를 불어넣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그러한 우월한 존재로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만을 먹는 일만을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제약도 없었기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에덴에서의 삶은 지복의 상태 그 자체였으며 가장 근원적인 자유가 그들의 삶 가운데 보장된 행복하고 복된 영육간에 순결한 나날의 연속이였습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만을 삶의 중심에 모시어 들이는 그러한 정결한 삶이었기에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것이 그처럼 즐겁고 기쁜 일이 없었습니다. 육적으로는 부부간의 아름다운 도덕적인 순결로 정조가 있는 그러한 순결한 삶이었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아담에게서 하와에게로 들려졌습니다(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yrIc;B]mi rc;b;W ym'x;[}me !x,[, !['P'h' tazO)3). 그러나 그러한 세월도 그리 길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아담과 하와의 아름다운 날에 사단의 시기와 질투가 있어 부부를 유혹합니다4). 그 유혹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단절을 이루는 것이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담과 하와의 순결한 사랑도 갈라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단의 유혹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금단의 열매, 즉 선악과를 먹으므로 순결한 눈이 아닌 죄악의 눈을 밟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단 곧 뱀은 연약한 여자에게 물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영적인 지조를 흔들면서 묻기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것입니다(창3:1). 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게 하려는 사단의 고도의 전략이였습니다. 그 전략에 하와는 그만 응답을 하고 맙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답하여 줍니다(창3:3). 여기에 사단의 함정이 있었고, 여기에 빌미5)가 있어 사단에게 속아 넘어가는 계기가 됩니다.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악과의 계명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고, 말씀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음으로 먹지 말라는 말씀에 한 구절을 추가하여 만지지도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이 문제가 아니라 사단의 말에 응한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단은 이단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말을 잘 하여도 그 말을 곡해하여 진리를 왜곡하고 맙니다. 그러하기에 사도바울이 이단에 대하여 경계하여 말할 때에 디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6).
딛3:10-11 /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와는 이러한 생각을 하기도 전에 사단의 전략에 말려들어 대화함으로 그만 악의 물꼬를 자신에게 틀어놓는 격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넘지 말아야 할선을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고 나가려 들지 않을 때 강하게 거부하고, 매몰차고, 냉정하게 대하여야 합니다. 인정에 끌리면, 말에 끌리고, 말에 끌리면, 영에 이끌리어 신앙에 심대한 타격을 받는 다는 사실을 우리는 하와는 물론 주변이 미혹된 기독인을 통하여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가슴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와는 이러한 사단의 전략에 말려들어 사단의 말에 동조, 동감, 동참하게 되는 비극을 잉태하고, 그 비극에 남편까지 끌어들이는 참담한 현실을 만들어 놓고 맙니다. 사단의 전략은 분명합니다. 기록된 말씀을 왜곡하거나 잘못 인식하게 하여 자신의 영역을 지금까지 구축하고는 수많은 영혼들을 도적질하여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록된 말씀으로 사단을 대적하니 사단은 기록된 말씀을 왜곡하여 예수님을 대적하였던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잘 압니다. 오늘 하와도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사단을 잘 응수하였지만 종국에 가서는 사단이 왜곡한 하나님의 말씀에 걸려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단의 전략에 완전히 말려들게 됩니다. 사단의 전술과 전략을 보시기 바랍니다.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단의 말이 어느 정도 합리성 있게 들립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된다는 말에 선악과를 따먹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라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7). 계명을 어김으로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이 죄입니다8). 언약을 포기하는 것이 죄입니다9). 아담이 언약을 배반한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먹은 것이기에 그 죄는 모든 인류의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류에게 죄의 유전자가 전수되어 오늘도 수없는 죄, 상상 할 수도 없는 죄들이 확대 재생산되어 우리의 삶을 어렵고, 불안하고,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소위 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혹은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고, 신비한 영적인 경험들을 인간에게 선사한들 그것이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아담의 타락으로 사람에게서는 구원의 지혜를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10). 이는 사단이 만들어 놓은 전략에 휘말려 버린 결과입니다. 이제 말씀을 통하여 그 사실을 확인하도록 합니다.
“창3:4-6 /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삼았더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인 되니 그 결과는 아주 참담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눈에 순결은 사라지고 불결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러하기에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3:7)고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서로를 바라보아도 색욕을 자극하는 시선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가득한 그러한 아름다운 존재로 보였습니다. 서로의 눈이라고 하는 마음의 창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양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였지만 이제는 눈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부끄러운 육신의 추한 모습만이 보이니 시선관리를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맡기신 일들을 감당하는 것이 하루의 보람이 되었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낯을 대하는 것도 무서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영적인 퇴보를 스스로 느끼면서 자괴감에 빠져버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전에 그렇게도 위기 당당하던 왕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초라하고, 아주 연약한 종의 모습으로 서 있으니 자기가 다스렸던 엄청난 크기의 동물들의 소리에도 소스라치듯 놀라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랍니다.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처지에 있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는 간과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hK;Y<a' ”(창3:9)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네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느냐는 말씀입니다. 네가 어찌 그리 나약해져 있느냐는 물음이십니다. 그 물음에 아담이 답합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고 말합니다. 죄는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마치 도둑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 수치를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책망하시는 말씀과 아주 흡사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11).
이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3:11)” 주님은 아직도 자상하십니다. 그 말에 아담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쁩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였나이다(창3:12)” 참으로 남자답지 못한 답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의를 전가시켜 주시지만 아담과 같이 타락한 인생은 항상 죄책과 과오를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들 모두 아담의 영적인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주님은 또 여자인 하와에게 묻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3)”라고 이제 하와도 죄의 전가를 물려받고 뱀에게 이를 덧씌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죄라고 하는 폭탄이 뱀에게 전달되자 폭파시키십니다. 그러함으로 즉각 뱀에게 저주의 말을 선포하시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아담에게는 생명의 길이요, 이것이 우리 인류에게 영생의 길인 것입니다. 그 말씀을 확인하면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창3:14-15 /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슴 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기록된 말씀과 같이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흙을 먹어야 하는 운명에 처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자와 뱀과 원수를 만들어 놓으신 뿐만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뱀이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을 통하여 오실 메시야을 은혜롭게 아담과 하와에게 계시하여 주십니다. 창세기의 기록이 창조의 이야기로서 위대한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창조의 이야기에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발꿈치를 친히 상하심으로 즉 십자가에 당하신 상처12)로 인류를 구원하실 것에 대한 언약의 말씀은 창세기의 백미13)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아담에게 복음이요, 예수님이요, 구원의 사건이듯이 우리에게도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치명타를 입히신 것과 같이 우리 또한 뱀의 세력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이 얻게 되는 영적인 유익입니다14). 이뿐만이 아니라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계명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 인류에게 비참한 죄의 결과를 가져왔지만(창3:16-24)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영접하게 되면 성령과 복음의 현저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그의 형상으로 다시 변화된다고 성경에서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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