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요4:19-26 예배에 관한 교훈

아론33 2009. 3. 17. 19:59

 JOHN10 4:19-26.  예배에 관한 교훈


  우리는 지난 주 피에 화요일에 일어난 WTC와 펜타곤의 대테러사건을 바라보면서 사람 사이의 갈등과 증오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람과 사람 사이는 옛날과 같이 분열되고 치료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우방들은 이번 오사마 빈 라덴과 관련된 테러사건을 접하면서 깊은 동정과 슬픔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한 부시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의 추도예배를 보면서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예배의 형태로 하나님 앞에서 나타내고, 자비와 긍휼을 호소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는 수준 있는 신앙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 간에 주된 주제가 예배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예배에 관한 교훈이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나타났는데, 오늘날 기독교 예배에 있어서 본문은 예배의 중요한 원리로 널리 읽혀지고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예배의 구체적인 교훈에 관하여 상고하여 보겠습니다.


  예배의 의미


  예배는 우리들 편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편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먼저 이루심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우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든 존귀와 감사와 신뢰를 받으실 분임을 스스로 계시하심으로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의 예배는 인간에게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에 대한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요, 우리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적인 예배의 형태를 보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수동적인 부분으로 시적인 부분이라고 하는 성경낭독이 있습니다.  또한 설교와 축도들이 베풀어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예배자에게 오시는 부분이요,  둘째는 능동적인 부분으로 기도와 찬송 그리고 헌금들로써 사람이 하나님에게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요소가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에 양방향으로 되어지는 것이 올바른 예배의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올바른 예배는 누가 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예수님을 만나고 믿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죄사함을 받은 심령이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의 죄를 지적하고, 자기에게 생수를 먹이운 예수님을 만나 이제 예배의 참된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예수님으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자 이제 예배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예배에 관하여 장소적인 문제를 먼저 언급하여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장소적인 문제


  옛적부터 어떠한 곳에서 예배를 하여야 하나님이 받으실까?  또는 어떠한 곳에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문제가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간에 예배의 장소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듯 합니다.   유대 사람들은 항상 주장하기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었고, 법궤가 있는 곳이니. 이 거룩한 곳에서 예배하는 것이 정당한 예배라 하여 예루살렘과 시온산을 자랑하였고 예배의 장소로 합당한 곳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뒤질새라 자존심 많은 사마리아 사람도 전설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그리심산에서 하나님께 드렸다 함과 여호수아 때에 축복한 산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여 벌써 무너진 성전 터(주전107)에서 예배하면서도 자기들의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주장하였습니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러한 생각은 유대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 사이를 더욱 반목과 불화로 몰아갔습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의 성도들간에도 예배의 장소에 관하여 사마리아 여인의 말과 같이 예배의 본질이 아닌 장소에 대하여 착각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성도는 다른 교회에서 예배 출석을 잘 하다가 교회를 옮기면 태도와 자세가 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예배당 안에선 경건한 신앙인 같으나 예배당밖에 나가면 믿는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릇된 관념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오늘 이러한 성도는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여도 주님이 그들 중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예배당이 화려하든지, 교인이 많든지 적든지, 참 마음으로 합심하여 모이는 것이 중요하지 장소적인 문제는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기독교 초기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예배당에 모이지 못해 예배의 자유가 없는 고로, 동굴의 밀실이나 또는 음침한 감옥에서 비밀한 중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미국도 1790년까지 예배할 곳이 없어 나무 밑에서나 혹은 조그만 막사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장소에서도 그 당시에 성도들은 뜨거운 중심으로 향기로운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의 현 주소를 어떠합니까? 예배당이 화려하고, 설비가 완전하지만 신앙은 식어가고, 영적인 정서를 메말라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로 볼 때 예배의 장소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의 어리석은 질문에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십니까? 21절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우리는 지방과 장소를 따라 신앙이 흔들리지 말고, 환경을 좇아 예배정신이 움지이지 말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과 예배의 방법(정신)


  종교마다 예배하는 대상인 신이 있습니다.  카알라일의 영웅숭배론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뱀과 소를 섬기면 뱀과 소가 되고, 여우와 살괭이를 섬기면 여우와 살괭이가 된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섬기는 신을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이 큰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제가 회사의 협력업체를 돌아다니다 보면 많지는 않지만 그 사장의 분위기와 회사원의 분위기는 같이 돌아갑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섬기는 대상이나, 따르는 사람에 따라 성향이나 기질이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이신 하나님(24)이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1).  따라서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 속으로부터 솟아나는 맑은 샘물과 같이 정결한 영을 사모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

  여기에 영이신 하나님이란 보이지 않는 존재란 뜻입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예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동서남북, 어느 쪽을 향해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영이신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바꾸려고 무던히도 애쓴 장면이 나오곤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보다는 우상 섬기는 일이 훨씬 예배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의 방법이 아닙니다.     

  올바른 예배는 형상이 없는 예배로 하는 것이 합당한 예배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주님이 가르쳐 주신 예배의 방법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르쳐주신 예배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21).   이 말씀은 사마리아인들의 거짓되고 억지였던 예배를 부인하는 말씀인 동시에 또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 드리던 예배에 대한 부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3).

  내용이 없는 형식적 제사행위나 예배행위가 얼마나 가증스러운가를 주께서 지적하시고(사1:10-17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이제 때가 되었으니 주님의 이름으로 참 예배다운 예배를 드릴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마리아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자 유대인들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자, 그 반발로 소위 모세 오경을 사마리아 오경으로 변조하여 그리심 산에서 나름대로 예배를 드린 배경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모세 오경만 가지고, 열등의식으로 게다가 혈통도 혼혈이고 제사행위도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 종교를 혼합한 것을 지적하시는 잘못된 예배행위를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 중에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오경만이 아니라 성경전체를 다 가지고 있는 유대인의 입장이 합당한 방법이라는 것을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구약의 대표적인 증언4)으로 이사야2:1-4과 미가4:1-5의 말씀 내용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말씀을 하시고 주님은 예배에 관하여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 신령과 진정이란 말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씀을 앞세우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성령과 진리의 말씀으로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고, 성령은 주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역할을 가리킵니다(16:13).5)  그러므로 하나님께 올바로 예배를 드리려면 반드시  주님을 믿고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인위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자기 중심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자기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합니다.  이러한 예배는 합당한 예배로 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따라,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도움을 입어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올바른 예배의 방법(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수가 여인은 도덕적으로 부정하기 짝이 없는 여인이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선지자로 바라봅니다.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하더이다라고 고백하고 이제는 메시야까지 들고나옵니다.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온전히 그 여인에게 드러내십니다. 


  2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수가 성 여인을 향하여 이제는 주님을 믿으라는 말씀과 같은 내용이나 다름없는 말씀입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21절에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고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이 말씀과 같이 이제는 주를 믿어 올바른 예배자로 서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합당한 예배를 위해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섬겨 그 분 앞에 온전히 엎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배자에게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1) 요일4:7-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2)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3) 요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4)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5)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