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3:1-3 이상적인 연합
이상적인 연합
시133:1-3 / 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이 시에는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의 가정사는 우리가 아는 대로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다윗1)의 아들 암논과 다말의 불륜의 관계, 압살롬의 암논을 죽이는 형제간의 살육전(삼하13:29), 압살롬의 반역(삼하14:25-27 외모, 삼하15:10)으로 인한 도피와, 쿠테타가 진압된 이후에 압살롬의 죽음(삼하18:14-15)으로 이어지는 자녀의 살생은 다윗의 노년을 슬프게(삼하18:33) 하였고, 자녀들 간에 왕권(왕상1:5-6 아도니야 외모)을 둘러싼 반목과 불신은 다윗이 죽은 이후에도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자기의 가정사를 생각하면서 본 시편에 기록하기를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하여 주고 있습니다.
1절. "보라. hNEhi" 이는 아주 중요하거나, 어떠한 것을 소개할 때 듣는 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표현입니다. 이제 말한 것이 보기 드문 경이로운 현상이므로 주목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이는 믿는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본받게 만들 것이니 그러므로 잘 주목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며 보시니, 관심을 기울여 그것을 잘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상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총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말씀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2) 어찌 그리 선하고3) 어찌 그리[역자주] 아름다운고."
dj'y:A!G" !yjia' tb,v, !y[iN:Ahm'W b/FAhm'
다윗의 형제지간도 성경에서 살펴보면 그리 원만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신복이였던 요압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장자인데 요압장군과 다윗 간에 보이지 않는 알력은 형제지간에도 그리 순탄한 관계가 아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기야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고 하니 권력 앞에 그 어떠한 사람도 신뢰를 구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피곤에 지친 다윗, 가정의 분란에 지친 다윗이 항상 동경하였던 것이 가정의 연합이요, 민족의 연합이며, 신앙공동체의 하나 됨 이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본문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합과 하나 됨이 그 얼마나 뛰어난지 다윗은 "어찌 그리= 얼마나 많이 hm'"라는 말을 씁니다. 이 용어는 일종의 감탄사입니다. 얼마나 많이 선한지 보라. 얼마나 많이 아름다운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는 선함이나 아름다움을 측량할 엄두를 내지 않고 우리에게 스스로 보라고 합니다. '선한'과 '아름다운'이라는 두 형용사의 결합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최고의 가치가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선하다'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또한 아름답다는 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함)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지만, 종종 아름다운 것이 악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형편이 아름다우면서도 선하고, 선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하니 이는 악한 요소가 전혀 없는 영적인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라 "형제"가 동거하는 것이 언제나 지혜롭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경험상 서로 떨어져 있는 편이 차라리 낫고 다투며 동거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형제는 아브라함과 롯처럼 평화롭게 헤어지는 편이 요셉의 형제들처럼 시기하며 동거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사나운 반목으로 찢어지고 선하지도 않고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서로를 부담스러워 하고,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복달하면서 살아가는가를 이 시대적 상황을 통해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가 "연합dj'y:A!G" 4)"을 이루며 동거할 수 있고 그렇게 한다면, 그들의 교제는 눈여겨볼만 하며 거룩한 찬미로 노래할 만합니다. 오늘 우리 영적인 형제는 교회의 교제 가운데 동거해야 하는데, 이 교제에서 한 가지 핵심은 연합입니다. 본문에 연합은 행동통일, 장소적 동일성, 시간적 동일성이 전제된 하나를 말합니다. 삶의 길과 방향이 하나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영으로 하나 되며, 목적과 정신이 하나 되는 이것이 하나 됨이요, 연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임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다툼의 회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악과 추함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도의 참 사랑에 의하여 무효화되고 쉽게 배격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그 자체로 선하며, 우리 자신을 위하여도, 형제를 위하여도, 우리의 초신자들을 위하여도, 바깥 세상을 위한 전도사역에도 선한 일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그 연합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예배로 수년 동안 하나 된 교회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함과 즐거움의 원천이 됩니다. 어찌하든 우리는 하나 됨의 이상을 이루어야 합니다.
2절.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5)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wyt;/Dmi yPiAl[' dreYOv, @roh}a'A@q'z_ @q;Z:h'Al[' dreyO varoh;Al[' b/Fh' @m,V,K'
형제의 연합을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려고, 다윗은 예를 들어 설명하여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로 보듯이 그 복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형제의 연합은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데, 이는 최초의 대제사장이 위임식 때 기름 부음을 받았던 보배로운 기름에6) 비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하며 향기로운 것입니다. 아론의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이 부어지자 흘러서 옷에 떨어지며 그 옷깃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형제 사랑은 그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그 인자한 능력을 전해 주고 그들에게 복을 부여합니다. 진정한 조화는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줍니다. 그 선함과 아름다움은 출신이 가장 비천한 자도 공유하며, 종이라도 주인집의 사랑스러운 연합 덕택에 더 형편이 좋고 행복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향기로운 기름은 처음 떨어지던 장소에 한정되지 않고 대제사장의 머리를 흘러내려 수염을 적셨던 것처럼 머리로부터 흘러내리는 형제애는 방울방울 떨어져 기름처럼 흘러내려 모든 것을 향기롭게 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의복 위에 흘러넘칩니다.
이처럼 형제애는 처음 솟아난 마음에 흘러넘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에 속하는 열등한 지체들에게도 흘러내리며, 허락이나 승낙을 받지 않고 구하지 않던 곳으로 흘러갑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지역이나 민족이나 국경이나 연령의 경계선을 알지 못합니다. 형제애는 머리에서 나오지만, 발까지 떨어집니다. 형제를 향한 사랑은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내려갑니다. 이처럼 형제애는 내리사랑이 되지 않으면 그 복을 발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3절. "헐몬의 이슬7)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Yxi yrer_h'Al[' dreYOv, @/mr_j,Alf'K]
이슬은 높은 산에서 낮은 언덕으로 내려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 즉 예루살렘에 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형제 사랑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가며, 그 과정에서 원기를 회복시키고 생기를 돌게 합니다. 사랑의 거룩한 조화는 신비스럽게 축복받고 모든 은혜의 나무에 생명과 성장으로 나타납니다. 사랑8)은 공동체의 성장을 가능하게 합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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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예루살렘, 곧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형제애가 넘쳐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소중한 자녀들이 서로 간에 사랑 가운데서 연합하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영생이라는 가장 뛰어난 복을 명령하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사랑 가운데 동거함으로써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고, 이것은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사랑을 주소서. 분리하고 고립되는 정신이 아니라 동거하는 정신을 주소서. 논쟁하고 차별을 이루는 마음보다 연합 가운데 동거하는 마음을 주소서. 우리가 한마음과 한 정신이 될 때까지는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만유를 통일하게 하시는 이"(엡 4:5)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한 생각과 뜻을 가지고 하나 되어 아름다운 영적인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 될 수 있도록 하옵소서. 하나 됨으로 영원한 생이 우리 가운데 머물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이처럼 지극히 보배로운 영적 연합 가운데로 인도하소서. 아멘.
1) 삼하12:10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2) tb,v, '동거한다'는 말은 거주, 거처, 지속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인내하고 참으며 거하는 일은 형제의 사랑과 화합에 적절하다. dwell, have one's abode in a land, city, house
3) 적절하다 happiness, prosperity 전8:12 ~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4)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요 17:21).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1) '판단'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사도는 모두 한마음이 되라고 권한다(고전 1:10). 다양한 색채의 옷을 입은 신앙이나,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갖가지 길로 행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이처럼 분열의 씨를 심은 것은 사탄이다(마 13:39). 그는 먼저 사람들을 하나님과 분열시키고 그런 다음 사람끼리 분열시켰다. (2) '성정'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마음을 가져야 한다.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행 4:32). 음악을 예로 들면 비올의 현이 여럿이지만, 모든 현이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든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많지만, 그들 가운데 성정의 아름다운 조화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니, 그를 섬기는 자들은 하나여야 한다. 참된 신앙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고 입교자가 많아지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의 심금이 연합되어 있는 고백자들을 보는 일뿐이다. 만일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하나님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한마음이 되고 한 심정이 되어 그리스도의 기도를 이루어야 한다.
5) 우리의 장형(長兄), 곧 우리의 기름 부음받으신 대제사장에 대한 인식까지 어떻게 이르게 되는지 주목할 만하다.
6) 마26:6-13 / 7. 향유, 12. 향유 복음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 고후2:14-16 /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7) 신32:1-2 /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신33:13 /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사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호14:5-7 / 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두주같이 되리라.
반 데 벨데(Van de Velde)는 '여행기'(Bd. i. s. 97)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편 133편에서 읽었던 헐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이 이제 내게 아주 가까이 있다. 여기 헐몬 산 기슭에 앉아서 나는, 숲으로 둘러싸인 산들에서 그리고 일년 내내 눈으로 덮인 아주 높은 골짜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살에 가늘어져서 주위를 적시면서 저녁 시간에 돌출부처럼 둘러 있는 낮은 산들 위에 어떻게 많은 이슬처럼 내리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 비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위하여 헐몬 산이 푸른 하늘 높이 반짝이는 백금색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려고 했다. 헐몬의 인근 지역처럼 온 나라에 이슬이 그렇게 많이 내리는 곳은 없다." 시인은 형제애를 이 이슬에 비교한다. 이는 "헐몬의 이슬" 같다. 시원적인 신선함으로 원기를 회복시키고, 그와 같은 시원적 능력으로 생기를 주며, 위로부터 내려온다(시 110:3). 그래서 사실상 시온 산 위에 내리는 헐몬의 이슬과 같다. 이는 자연 현상의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특색이다. 왜냐하면 따뜻한 날이 있은 후, 북쪽에서 헐몬을 넘어 휩쓸고 내려오는 차가운 기류의 작용에 의하여 풍부한 이슬이 예루살렘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알프스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가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며 그 결과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경험을 통해 안다. 그러므로 시인의 비유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자연 현상에도 맞다. 사랑으로 서로 연합한 형제들이 한 장소에 함께 모일 때, 그리고 실제로 큰 절기에 북쪽의 형제들이 남쪽의 형제들과 함께 모든 이의 어머니인 예루살렘에 모일 때, 이는 깊이 쌓인 만년설이 덮여 있는 헐몬 산의 이슬이 시온을 두르는 벌거벗고 열매 맺지 못한(그래서 그와 같은 활기를 갈구하는) 산들에 내릴 때와 같다. 예루살렘에서는 사랑과 선한 모든 것이 틀림없이 만난다
8) 엡4:15-16 /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9) 이는 위대한 인물, 사령관, 혹은 황제에 관한 암시일 수 있다.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전 8:4). 백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9). 이처럼 하나님은 한 규례에 명령하신다. '가서 그런 성도를 일으켜라' 하면 그 규례는 그렇게 행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나란히 간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없고 그들에게 순종할 힘을 줄 수 없다. 그들은 저는 자를 걷도록, 눈먼 자를 보도록 명할 수 있지만, 걷거나 볼 수 있는 힘을 줄 수는 없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가지고 명령하시며 또한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옛 창조에서처럼 새 창조에서도 그렇게 하신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 주님이 거기서 복을 명하셨나니 "영생이로다." 결코 중단하지 않을 영생 혹은 신령한 생명의 흐름은 여전히 전진하고 증가하며, 그 물결이 높아져서 영생의 대양이 사망을 삼킬 때까지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