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문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예정
엡1:3-14
제 7 문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예정은 그 뜻대로 하신 영원한 경륜이신 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무 릇되어 가는 일을 미리 작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소요리문답 제 4 문에서부터 제 6 문까지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분은 영이시고, 살아 계시고, 참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하나님이 어떠한 일들을 하시는지 그분의 속성들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작정은 모든 일과 만물에 관계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우주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들을 진행케 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계획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예정은 특수적인 범위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 특히 이성적인 피조물에 관한-천사, 사람-하나님의 계획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일반적인 계획인 작정 보다는 도덕적인 피조물에 관한 계획인 예정을 상세하게 다루려고 합니다.
예정은 천사들과 선인과 악인, 개인과 공동체를 비롯하여 온 인류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도 예정의 대상이 되십니다. 그리고 예정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한다면 선택과 유기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선택에 의해 어떤 사람은 구원에 이르도록 작정하셨다는 뜻이고, 후자는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을 멸망에 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천사의 예정은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충분한 이유 때문에 선택된 천사는 거룩함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더하여 특별한 은총을 주시고 버림받은 천사에게는 이것을 주시지 않는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도덕적인 피조물에 관한 예정을 생각할 때에 첫 번째 부분인 선택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예정론을 압도적으로 명백하게 지지합니다. 하나님꼐서는 그의 영원하고도 변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구원으로 받아들이실 사람들, 즉 선택된 사람들에게 그의 기쁘신 뜻에 따라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사람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 안에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의 표현대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라고 기록합니다. 이를 좀더 확인하기 위해 롬9:10-18을 보면 우리는 선택과 유기의 정확한 원인과 결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게 하시느니라.
여기에서 살필 수 있는 것은 선택은 전적으로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요, 원하는 자라고 다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이를 위해서 달음박질 하는 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선택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 선택이 유효하게 되기 위해서 사랑이 적용됩니다. 그리고 긍휼, 불쌍히 여기심이 드러나고 그 결과 주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은 행위가 있기전, 아직 나지도 아니했을 때에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긍휼함과 불쌍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러한 선택함을 받고, 신령한 복을 받고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야곱은 이 선택의 은혜 때문에 각종 곤란과 고통, 쓸쓸한 타향 생활과 많은 슬픈 일 및 비통과 근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장자 권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못함으로 에서의 낯을 피하여 리브가의 오라비인 라반에게로 피합니다. 브엘세바에서 밧단아람(약800km)으로 피하는 과정에서 그는 돌을 취하여 베게하고 거기 누워 자야 하는 비참함을 맛보아야 했습니다.(창28:11) 그리고 그는 외삼촌을 집에 들어가 더부살이 하는 동안 라헬을 사랑하였으나 라반은 그 지역의 풍습(창29:26)이라는 이유로 원치아니하는 레아와 결혼시켜 했고,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도합 14년이라는 근로계약을 강제로 맺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6년을 일하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는 떳떳하게 오지 못하고 라반의 추격을 당해야 했고, 집에 가려고 했을 때에는 칼을 든 에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또한 귀향 길에서 자신의 친딸 디나가 추행 당하는(창34:1-3) 고통을 철두철미하게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질곡에서 주님은 고비마다 은혜주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늘 지붕 밑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는 28:15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킬 것이다”는 안전보장과 라반의 밑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할 때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틀이 되는 후손을 얻었고, 라반의 추격 때에는 하나님이 밤에 라반에게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고 엄중경계하셨고, 에서의 위력 앞에 떠는 야곱에게 주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을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축복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의 문제로 주변 이방인들과 갈등이 증폭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35: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택함을 얻은 자에게는 환난과 시련이 있으나 결국은 주님의 안전지대(시12:5)와 긍휼하심과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로 인하여 넉넉하게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분명한 것은 이러한 안전지대(롬8:33-39)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버림받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이들은 중생과 구원의 은혜를 받음에 있어서 제외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게 됩니다. 야곱과는 반대로 에서는 아직 범죄로 더럽혀진 일이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간과되었습니다.(롬9:13)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야곱에게도 에서 못지 않은 거짓과 속임수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리를 양으로 만드실 때에, 그들의 강팍한 마음을 극복할만한 더 강력한 은혜로 그들을 개조하신 것입니다. 야곱도, 바울도, 보아너게라고 불리워진 요한과 야고보도 이러한 강력한 은혜로 붙드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예정에 관한 가르침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주님의 말씀에서도 예정론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6:37-39 /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이것이니라“ 주님은 또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요17:9 /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주님은 세상에서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기도하십니다. 히7:24-25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또 우리가 예정함을 입은 증거로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과 생명과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곳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샘이며, 구원의 닻이며, 천국의 상속자이시기 떄문입니다. 성경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에 대한 생명의 확신과 구원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주신 믿음의 증거들이며, 예정의 증거입니다.
그 결과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연합되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된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리고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바울의 말(빌3:20)에 깊은 공감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결론하여 말씀드립니다. 온 세상을 작정하시고 우리을 예정하셨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고 일관성 있게 증거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하나님의 예정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의 거저 주시는 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르심에 합당히 거하기 위해서 야곱이 곤란과 고통, 외로움과 슬픔, 비통과 근심, 삶에서 찾아오는 온갖 좌절들을 은혜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 앞에 있는 야곱과 같은 문제들이 찾아 올 때마다 문제해결의 실마리인 은혜를 주 앞에 담대하게 구해야(히4:15-16) 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자기를 힘입어 나아가는 자들을 위해서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11:29)
주님 우리를 부르셨으니 우리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주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소서.
2. 우리를 성령으로 인 치셨으니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으니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 니라” 행4:31
우리에게 충만함을 더하사 믿음의 역할을 올바로 할 수 있도록 하소서.
3.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주님 성령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하소서. 육체의 일을 버리게 하소서.(음행, 호색, 원수를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투기)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셨으니 내 안에 있는 옛 사람을 변화시켜 주옵소서.